본문 바로가기
구약 속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 새와 물고기, 짐승과 사람의 자리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4.

창세기 1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아름답고 정결하게 지어진 질서의 공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생물은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고, 모든 생물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그 창조의 세계는 단지 물리적인 자연의 창조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복이 생명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속사의 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와 새에게 하신 축복은 단순히 번영과 성공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존재 목적에 대한 복입니다. 이는 그저 수적 증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삶의 자리를 충실히 살아내는 복입니다.

우리는 흔히 ‘
’을 물질의 풍요나 인간적인 성공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물고기나 새들이 받은 복은 그들이 자연 속에서 자기 자리를 충실히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보살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바다의 염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시고, 새들이 날 수 있도록 궁창의 구조를 설계하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그 생명들은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가요? 원 다스림의 본질은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통치입니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곧 ‘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창조입니다. 그러나 그 다스림은 폭력이나 억압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섬김과 보호의 통치였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달리 자율성과 도덕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율성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타락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인간의 다스림은 깨어졌으며, 피조물 전체가 저주의 결과를 함께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며,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하게 된 이 모든 무질서의 근원은 인간의 타락에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질서를 허물고, 바다의 염도를 낮추며,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단어 "
종류대로(르미네후)"는 하나님의 질서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각 생명을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서로 다른 종은 넘나들 수 없는 구분이 존재합니다. 이는 생명의 본질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고정된 것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경계를 허물려 합니다. 진화론, 유전자 변형, 인공수정과 같은 기술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의 질서를 침범하고 왜곡합니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진보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자율성의 극단적인 발현이며, 창조 세계에 대한 반역입니다.

창세기 7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은, 단순한 위생적 기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과 받지 않으시는 것, 즉 구원과 심판, 거룩함과 타락함의 기준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진 짐승은, 세상의 힘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자의 예표입니다. 이는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며 취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존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자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평화를 이루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바로 이 정결한 짐승처럼,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며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본래 ‘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그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에서 잠시 그 회복된 나라를 예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회복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 정결하지 못한 짐승들이 하나님에 의해 “
깨끗하다고 하신” 그 장면은 타락한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해질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정결함은 외적 규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입니다.

이제부터 염려 대신 신뢰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땅의 짐승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충실히 살아갑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삶의 길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6)

우리는 이 땅에서 되새김질하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3,9)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식탁을 준비하십니다. 내 밥그릇이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축복의 자리라면 감사로 받는 것이 성도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탐욕 대신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은 지금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다시 질서를 회복하실 계획을 세우셨고, 그 회복의 첫 열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우리 성도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는 이제 ‘
보시기에 참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거룩한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순종과 신뢰로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