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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4.

창세기 1장 26~31절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근본적이고 가장 명료한 대답은 창세기 1장 26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진 존재” 이것이 성경이 인간에게 부여한 정체성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이며,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 속에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창세기 1장은 “
있으라”는 명령으로 창조된 세계의 장엄함을 묘사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기고, 궁창이 있으라 하시매 궁창이 생기며, 생물들이 “종류대로” 땅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피조물, 바로 인간만큼은 다르게 지어졌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창조 이전에 의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담긴 이 말씀은, 인간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역에 참여하는 존재로 지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쩨렘’(형상), ‘데무트’(모양)라는 이 단어들은 단순한 외형이 아닌, 인간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 “우리가 만들자”라고 삼위 하나님께서 의논하신 모습은 단순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 창조가 얼마나 특별한 사건이며, 얼마나 존귀한 의도를 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외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눈에 보이는 육체를 갖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체적 구조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
도덕성, 이성, 의지, 창조성, 관계성, 통치능력”과 같은 요소로 이해하게 합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으며, 창조하고 소통하며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1:1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선하게 살아간다는 수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곧 그분의 인격, 성품, 희생, 사랑을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자 구원의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땅 위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자로서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이는 독재나 착취가 아닌,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의 선한 통치를 의미합니다.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생명을 돌보며,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라는 부름입니다.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피조물을 이해하고 통치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은 이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대로 피조세계를 억압하고, 오히려 다스려야 할 대상에게 종속되어 버렸습니다. 하늘과 땅과 별을 숭배하고, 짐승과 자연을 신격화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우상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토테미즘, 애니미즘, 자연숭배, 별점과 운세 모두 이런 타락의 증거들입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통해
“너희가 섬기는 것은 신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창조하신 피조물일 뿐이다. 너희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우상숭배와 자기 욕심의 추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교회당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우리는 지금 그 형상을 따라 살고 있는가? 성경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 3:9)

이 말씀은 타락 이후에도 인간은 존엄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이 형상은 훼손되었고,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는 죄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회복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롬 8:29)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갈 4:19)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의 과정이며, 그 여정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자 방향입니다. 교회 생활, 기도, 말씀 묵상, 고난, 공동체 안의 갈등과 회복은 모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는 도구입니다.

결국 창세기 1장은 요한계시록으로 향하는 서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담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아담,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셨고,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그 형상을 회복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정 회복되어야 할 형상은 “
자기실현형 인간”이 아닌 “예수 닮은 인간”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병이 낫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과 소명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고통과 연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한 자들만이 온전히 누리게 될 영광입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