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요한계시록 2:4)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편지는 단순히 1세기 교회들만을 위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편지도 그렇습니다.
에베소는 그 시대 소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항구가 발달해 무역이 활발했고, 우상을 섬기는 종교 활동이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마술책과 우상들을 불태워 버릴 만큼 철저한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행 19:17~19) 그러니 에베소 교회는 열정과 행위로 충만했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계 2:2). 에베소 교회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들을 분별할 줄 알았고, 거짓 사도를 가려낼 만큼 바른 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단순히 지식만 가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고하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교회를 향해 뜻밖의 책망을 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행위도 있었고, 인내도 있었고, 교리적 분별력도 있었는데도 주님은 그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를 보면 그 답이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은혜로 아들 삼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엡 1:3~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얻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엡 1:7~14). 그리고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된 성도들이 사랑으로 반응했다고 말합니다(엡 1:15).
곧, 처음 사랑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사와 사랑의 반응을 의미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크고 놀라워서, 그 은혜가 내 삶을 이끌고, 나를 순종하게 만들며, 나를 섬김으로 내모는 그 사랑 말입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40년이 흐르는 동안 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행위는 여전히 있었고, 교리는 여전히 바르고, 선한 수고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이 더 이상 은혜의 감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행위가 형식이 되었고, 교리가 머리 속 지식에 그쳤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빠져버린 채, ‘해야 하니까 하는’ 종교적 의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나는 주일마다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에 앞장선다.”
이 모든 것이 분명히 귀한 일들이지만, 만약 그것이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아닌 자랑거리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에베소 교회와 같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잃어버린 행위는 결국 자기 의가 됩니다. 은혜 없는 교리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감사 없는 수고는 자랑으로 흐르고, 감격 없는 봉사는 의무와 피로로 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순간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셔야 한다”라는 잘못된 태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처음 행위란 단순히 열심을 다시 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에 대한 감격이 다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내가 구원받은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덕분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예배, 기도, 봉사, 섬김이 정말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습관입니까?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까? 나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게 하는 수단입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은혜에 감격하여 드려지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가 될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계 2:7).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행위나 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은혜의 감격을 잃어버린 데 있었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잊지 않고, 처음 사랑을 붙드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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