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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죽도록 충성하라 - 서머나 교회의 교훈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9. 20.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는 초대교회 가운데서도 특별히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칭찬받을 만한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그들은 궁핍했고, 박해를 받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장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신앙 때문에 생계가 막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감옥에 갇히거나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 2:9)

겉으로는 너무나 가난하고 약해 보이지만, 주님은 그들을 진짜 부자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은 부를
‘소유’로 정의합니다. 은행 잔고가 얼마냐, 집 평수가 몇이냐,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두어도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눅 12:21). 반대로 세상에서 가난하고 약해 보여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사람은 참으로 부요한 사람입니다(약 2:5).

서머나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예수님 때문에 매 맞고, 예수님 때문에 굶주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난과 손해가 그들에게는 하늘의 보화였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겼듯이(히 11:26),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도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난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열흘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여기서 열흘은 영원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을 뜻합니다. 고난은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정해 놓으신 훈련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환난을 만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관계에서의 상처, 사회적 불이익, 때로는 신앙 때문에 받는 오해와 비난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왜 막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하노라.” (계 2:8)

즉, 우리의 시작과 끝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그 환난조차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끝까지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주님을 더 귀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그 길 끝에는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기준에서 손해 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늘의 부요를 쌓는 길입니다. 지금의 환난과 궁핍은 잠깐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고후 4:17). 그래서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너는 실상 부요한 자다.” 이 말씀을 마음에 붙잡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