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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침묵, 하나님의 언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7.

라디오 부스 안, 붉은 온에어 등이 켜져 있던 어느 심야 방송이었습니다. 진행자는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날 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한 청취자의 담담한 글이 도착했습니다. 담담했기에 오히려 더 아팠습니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진행자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이크 앞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방송사고였습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서둘러 음악으로 상황을 넘기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 문자 메시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
함께 울었다"는 위로였습니다. 그중 한 문장이 오래도록 그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 오늘도 만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그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말을 잃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들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침묵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흔히 침묵을
'텅 빈 것',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침묵을 그렇게 다루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9장, 지쳐 쓰러진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은 강한 바람도, 지진도, 불도 아닌 "
세미한 소리" 가운데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이를 "고요하고 부드러운 소리"라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임재는 종종 굉음이 아니라 침묵에 가까운 고요함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조차 하나님이 무언가 극적인 방식으로 응답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침묵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가장 깊은 임재의 방식일 때가 많습니다.

2011년,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추모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문장을 마친 뒤 51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언론들로부터 그의 재임 기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말보다 강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신제품을 소개하기 전 몇 초간 침묵함으로 청중의 시선을 완전히 붙들었고,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통역이 이어지는 사이사이 절묘하게 말을 끊음으로써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침묵을 '
비워둔 시간'이 아니라 '준비된 여백'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 부릅니다. 마무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사람의 마음이 더 오래 머문다는 원리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설명된 것보다, 여백으로 남겨진 것이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강렬한 침묵은 화려한 연설의 여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총독이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랍게 여기더라"(마태복음 27장).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갖고 계셨음에도 침묵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이 예언한 그대로였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이 침묵은 무력함의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종의 침묵이었고, 사랑의 극치를 향해 가는 침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침묵으로 우리를 구원하기를 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침묵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침묵은 일상 속 관계에서도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자신의 발명품을 팔 때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구매자가 가격을 제시할 때마다 에디슨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상대는 스스로 가격을 계속 올려 결국 처음 에디슨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협상연구소의 윌리엄 유리는 협상이 팽팽할 때 가장 좋은 전략은 잠시 멈추고 침묵하는 것이라 조언한 바 있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나오는 말은 대부분 후회를 남깁니다. 잠언 17장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자로 여겨지고 그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부부싸움, 성도 간의 갈등, 자녀와의 언쟁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절제된 침묵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개 침묵을 불편해합니다. 기도할 때도, 예배할 때도, 관계 속에서도 자꾸 말로 그 여백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시편 46편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히브리어로 '가만히 있으라'는 표현은 손을 내려놓으라, 애쓰기를 멈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때로 말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 그 침묵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계신 순간일 수 있습니다.

라디오 부스에서 눈물을 삼키던 진행자도, 십자가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신 예수님도, 우리에게 같은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사랑은 종종 침묵 속에서 전달됩니다.

이번 한 주,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굳이 옳은 말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그저 곁에 침묵으로 머물러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도 청하는 말을 잠시 멈추고, 세미한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침묵은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가장 깊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