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은 밧세바와의 일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일 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여느 때처럼 왕궁을 다스리고, 전쟁을 지휘하고, 백성 앞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시편 32편에서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
인정하지 않은 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윗의 몸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하기까지, 다윗은 스스로에게 조차 그 진실을 감추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 예를 들어 시기했던 마음, 무너진 관계, 감당할 수 없었던 실패,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의 말 한마디,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무게를 지니고 우리의 하루를 짓누릅니다. 오늘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 압니다. 마음이 유난히 무거웠던 그 순간, 실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 애썼던 무언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형제와 사이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명절마다 얼굴을 마주쳐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고, 그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리곤 하셨습니다. "괜찮다, 이미 잊었다"고 늘 말씀하셨지만, 정작 그 형제의 이름만 나와도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몇 년 뒤 건강검진에서 원인 모를 만성 두통과 불면증 진단을 받으셨고, 상담을 받던 중 상담사가 물었습니다. "혹시 마음에 오래 묵혀둔 일이 있으신가요?" 그제야 그분은 눈물을 흘리며 형제와의 그 일을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내셨습니다.
성경은 이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바다로, 배 밑창으로, 결국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가서야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니"(욘 2:7). 도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더 깊은 곳까지 우리를 끌고 내려갈 뿐입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침 해가 떠도 그 빛이 닿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신앙적인 통찰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가리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말합니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문제는 빛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눈을 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어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깨닫지 못하는 것, 인정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둠의 실체입니다.
다윗은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아뢰고 내 죄를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인정의 순간, 자복의 순간이 바로 빛이 그에게 다시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시 32:7). 숨기던 자리에서 은신처로, 두려움에서 노래로 바뀌는 것, 그것이 인정이 가져오는 변화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 성장통이라는 것은 신앙의 언어로 다시 쓰면 '연단'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환난, 곧 우리가 부정하고 싶은 그 마이너스적인 경험이야말로 인내와 연단과 소망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회피하면 이 통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라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 어느 구석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조용히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을 계속 밀어내는 대신, 오늘 저녁 잠시 조용히 앉아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다윗처럼, 요나처럼, "주여, 이것이 제 안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이미 떠 있던 빛이 마침내 당신에게 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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