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파리채를 들고 뭔가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뭐 하는 거예요?" 하고 묻자 남편이 대답합니다. "파리를 잡고 있잖소." 그런데 남편의 대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컷 셋하고 암컷 둘을 잡았지." 아내는 궁금해집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남편이 진지하게 답합니다. "셋은 맥주 깡통에 있었고, 둘은 전화기에 있었거든."
우스갯소리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결혼의 진실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부란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틀림'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신혼 초, 어느 남편이 욕실에 들어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헛것을 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헛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였습니다. 다만 아내의 두 발이 세면대 안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당신 뭐 하는 거야? 왜 발을 세면대에서 씻어?" 깔끔을 떠는 성격의 남편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광경이었습니다. "발은 밖에서 씻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그러자 아내도 지지 않고 대답합니다. "더럽긴 뭐가 더러워. 발 씻고 물로 헹구면 되지."
이 남편은 훗날 부부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청중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옳은 걸까요? 제가 옳은가요, 아내가 옳은가요?" 사람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맞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차이일 뿐입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발은 반드시 밖에서 씻어야 하는 것이었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세면대만 다시 씻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을 '틀렸다'고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
같은 부부가, 이번엔 6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보, 거기서 양치질을 하면 어떡해!" 앙칼진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옵니다. 남편이 싱크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뭐 어때, 싱크대에서 양치질하면 안 되나?" 아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먹을 것을 씻고 준비하는 그 자리에서 양치질이라니요. 하지만 이것 역시 어느 한쪽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조차 이런 사소한 차이 앞에서 여전히 부딪힙니다. 그만큼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다름을 틀림이라 우길까요?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입장에서만 세상을 봅니다. 내가 자라온 방식, 내가 익숙한 습관, 내가 편안하게 여기는 기준이 곧 '정상'이고 '옳음'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배우자의 행동은 자동으로 '이상한 것', '고쳐야 할 것'이 되고 맙니다.
가령 한쪽은 어릴 적부터 치약 짜는 법 하나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는 집에서 자랐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꾹꾹 눌러 짜야 한다는 원칙 말입니다. 반면 다른 한쪽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집안에서 자랐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면, 치약 튜브 하나를 두고도 "왜 저렇게밖에 못 하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서로 다르게 형성된 습관의 차이일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부부도 신혼 초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적응이 필요한 부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저 사람이 틀렸다"는 생각에서 "저 사람은 나와 다르게 살아왔구나"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 그것이 부부 관계에서 평생 연습해야 할 훈련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사실 별일 아닌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별것 아닌 일을 붙잡고 피 터지게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 속 위대한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나머지 모든 것에는 사랑을!" 이 말은 신앙 공동체를 향한 말이었지만, 부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결혼 생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본질적인 가치들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정직, 존중, 헌신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발을 어디서 씻는지, 양치질을 어디서 하는지, 치약을 어떻게 짜는지와 같은 문제들은 비본질적인 영역입니다. 이런 것들에는 자유를 허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그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처음엔 불편하고 어색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신혼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부부라면, 지금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낯선 습관들 앞에서 너무 쉽게 실망하거나 상대를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것도, 아내가 유독 어떤 순서로 집안일을 하는 것도, 어쩌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저 자라온 배경이 다른 데서 나온 결과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조건 참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화는 필요합니다. 다만 그 대화의 출발점이 "당신이 틀렸어"가 아니라 "우리가 다르구나, 어떻게 맞춰갈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태도의 차이가, 수십 년을 함께할 부부의 관계를 지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더 깊고 편안하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입니다. 그 사실 하나를 마음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부엌에서, 욕실에서, 그리고 삶의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들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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