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에베소서 1:2)
에베소서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3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천국의 시민으로 만드셨는가, 4~6장은 그 천국의 시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며 이렇게 인사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인사말 속에 이미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 이 두 단어는 신앙의 시작이자 결론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화는 ‘싸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단지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된 상태를 뜻합니다.
‘샬롬’(Shalom)이라는 히브리어 인사말은 단순히 “좋은 하루 되세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당신의 영혼이 온전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리 이후의 연합을 ‘평강’이라 부릅니다.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 회복된 상태, 이것이 참된 평강입니다.
그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 하고, 에베소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짧은 두 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그분 안에서 사도가 되었고, 그분 안에서 성도가 되었으며, 그분 안에서만 은혜와 평강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평화를 가르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화목을 이루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 안에서만 평강이 주어집니다.
세상도 “평안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평안은 언제나 조건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상황이 좋으면 평안하고, 무너지면 불안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강이 없도다.”(렘 6:14) 죄가 여전한데, 회개가 없는데, 그들의 평안은 거짓 평화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병이 낫고, 사업이 잘 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심리적 안정’일 뿐입니다.
예수의 평강은 고난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 12:51)
예수를 믿으면 오히려 분쟁이 생깁니다. 세상과 부딪히고, 가족과 갈라서기도 합니다. 그분 때문에 잃고, 그분 때문에 손해 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모든 불이익과 눈물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강입니다.
평강은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2) 죄인들은 그 평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마음을 여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평강을 깨닫지 못합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오듯,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침투하셔서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평강은 순종 속에서 경험됩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학원을 개원하면서, 조금만 눈감으면 더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는 불법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속일 수 있겠느냐”는 고백으로 눈물로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는 힘들고 느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상하리만큼 잔잔한 평안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평강입니다.
평강은 ‘편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세상이 주는 ‘편안’은 상황이 만들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관계에서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시작되고, 그 화목이 사람과 세상 속으로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하나님과의 평화 안에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 평강이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우리의 심령에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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