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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 ‘나’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교차점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크고 장엄한 산맥을 바라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 앞에 서면 숨이 멎을 정도로 웅대하고, 인간이 감히 오르기조차 어려워 보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너무 높아 단숨에 오르기 어렵지만, 그 산의 골짜기와 낮은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은혜의 들판으로 우리를 데려가 줍니다. 우리는 그 산의 정상에 오르려 하기보다, 본문 안에 숨어 있는 삶의 길목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라는 단어가 말해주는 것은 복음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눈에 띕니다. 본문은 일인칭 단수로 가득합니다. ‘내가’, ‘나를’, ‘내 안에’, ‘나를 위하여’… 사도 바울은 누구도 끼워 넣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공동체도, “우리 모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와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와 나뿐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막연한 ‘
인류’ 속에 빠뜨려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미경처럼 개인을 분명하게 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사회의 일부”, “사람들 가운데 하나”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영혼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타락했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몸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대중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각자 이름을 가진 영혼이고, 기억되며, 불리며, 책임을 지는 개인입니다.

개인적인 죄의 자각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회심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
내 죄가 아닌 인류의 죄만 슬퍼한다면, 그는 회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들의 죄’를 위한 상징이 아닙니다. 먼저 내 죄를 위한 십자가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군중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화살은 무작위로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내 심장을 겨냥한 단 하나의 화살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선지자가 외친 “
화로다, 나여!” 그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구나”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구나.” 당신은 이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결국 ‘
개인적 수납’입니다 누군가 대신 믿어줄 수 없습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의 구원 티켓이 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교회의 경건함이 나에게 자동으로 흘러오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가슴에 받아들이고, 그분의 십자가 아래 개인적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결과인 평안도 철저히 개인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평안, 다른 사람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 오직 예수 안에서 한 영혼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평안입니다.

개인적인 믿음은 곧 개인적인 헌신으로 이어집니다. 복음이 진짜로 우리 안에 들어오면, 사람은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
주님, 여기 제가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아도 나는 해야 합니다. 교회가 식어 있어도 나는 타올라야 합니다. 아무도 옳은 것을 외치지 않아도 나는 말해야 합니다. 아무도 믿음의 길을 가지 않아도 나는 걸어야 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
나 아타나시우스는 온 세상을 대적한다”고 외쳤듯, 느헤미야가 홀로 성벽을 다시 세웠듯, 참된 믿음은 언제나 개인적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결국 혼자 하나님 앞에 설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혼자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신앙의 모든 요소는 ‘
개인성’을 요구합니다. 개인적인 선택, 개인적인 부르심, 개인적인 회심, 개인적인 칭의와 구원, 개인적인 성화, 개인적인 순종, 개인적인 책임, 어떤 것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세례도,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이고, 떡과 잔을 입에 넣는 것도 ‘’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개인으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복음적 정수는 이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래서 이제 ‘
’가 산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신앙의 성장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 개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참된 ‘
’의 모습을 빚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신다면, 나는 더 이상 옛 ‘’가 아닙니다. 나는 그분의 것, 그분의 삶, 그분의 목적, 그분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 저를 군중 속의 한 사람이 아닌, 주님 앞에 홀로 서 있는 한 영혼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저의 죄가 개인적인 것이었듯, 저의 구원도 개인적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이 신비를 오늘 제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하소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아무도 격려하지 않을 때에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을 때에도, 나는 주님 앞에 선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