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으니, 이는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슬기롭도다.”(누가복음 16:8)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으며 가장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 죄인은 용납되고, 의인은 버림받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비밀은 바로 그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나 도덕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불륜’을 범하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과 부정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배신했는데,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불의한 신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불륜의 관계 속에서 ‘은혜라는 자녀’를 낳으셨습니다. 그 자녀가 바로, 우리 불의한 성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는 참으로 난해합니다.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 청지기가 오히려 ‘칭찬’을 받는 장면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은혜 원리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늘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며 살아온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재능, 사랑, 기회를 허비하며, 그분의 뜻보다는 내 이름과 안위를 챙겨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청지기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미 해고된 존재임을, 자신에게는 더 이상 아무 공로도, 자격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은 것을 풀어, 빚진 자들의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불의했지만, 그 속에는 은혜의 원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파산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의 불의와 무능을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늘의 칭찬을 주십니다.
이 비유의 진정한 주제는 ‘재물’도, ‘지혜’도, ‘청지기직의 충성’도 아닙니다.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심으로 드러난다. 청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칭찬이라는 단어는 원래 ‘찬양하다, 영광을 돌리다’라는 의미로, 계시록에서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께만 돌려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단어를 불의한 청지기에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죄인을 찬양하십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높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함을 통해 당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한 우리를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분은 ‘정결한 신랑’이셨지만, ‘간음한 신부’인 교회와 결혼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법으로는 불륜이요, 은혜의 법으로는 구속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의합니다. 탐욕과 이기심, 위선과 자기보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은혜의 자녀라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행위를 보고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불의를 대신 지셨고, 그분의 의가 우리 안에 잉태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불륜’의 결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분의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불의한 몸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의가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청지기 역할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불의함을 드러내시고, 그 불의함 위에 당신의 의를 입히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청지기가 되는 길은 내가 가진 것을 의롭게 관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불의한 청지기였음을 고백하는 것, 거기서부터 참된 회개와 은혜의 생명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불의하지만, 내가 너를 찬양하노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잉태된 하나님의 불륜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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