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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하나님의 불륜, 그리고 거기서 잉태된 불의한 성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2.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으니, 이는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슬기롭도다.”(누가복음 16:8)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으며 가장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 죄인은 용납되고, 의인은 버림받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비밀은 바로 그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나 도덕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
거룩한 불륜’을 범하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과 부정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배신했는데,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
불의한 신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불륜의 관계 속에서 ‘은혜라는 자녀’를 낳으셨습니다. 그 자녀가 바로, 우리 불의한 성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는 참으로 난해합니다.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 청지기가 오히려 ‘
칭찬’을 받는 장면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은혜 원리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늘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며 살아온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재능, 사랑, 기회를 허비하며, 그분의 뜻보다는 내 이름과 안위를 챙겨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
지혜롭다’고 칭찬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청지기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미 해고된 존재임을, 자신에게는 더 이상 아무 공로도, 자격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은 것을 풀어, 빚진 자들의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불의했지만, 그 속에는 은혜의 원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
칭찬’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파산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의 불의와 무능을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늘의 칭찬을 주십니다.

이 비유의 진정한 주제는 ‘
재물’도, ‘지혜’도, ‘청지기직의 충성’도 아닙니다.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심으로 드러난다. 청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칭찬이라는 단어는 원래 ‘찬양하다, 영광을 돌리다’라는 의미로, 계시록에서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께만 돌려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단어를 불의한 청지기에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죄인을 찬양하십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높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함을 통해 당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한 우리를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분은 ‘
정결한 신랑’이셨지만, ‘간음한 신부’인 교회와 결혼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법으로는 불륜이요, 은혜의 법으로는 구속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의합니다. 탐욕과 이기심, 위선과 자기보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은혜의 자녀라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행위를 보고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불의를 대신 지셨고, 그분의 의가 우리 안에 잉태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
불륜’의 결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분의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불의한 몸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의가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청지기 역할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불의함을 드러내시고, 그 불의함 위에 당신의 의를 입히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청지기가 되는 길은 내가 가진 것을 의롭게 관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불의한 청지기였음을 고백하는 것, 거기서부터 참된 회개와 은혜의 생명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너는 불의하지만, 내가 너를 찬양하노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잉태된 하나님의 불륜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