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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하나님과 친밀함 - 풍성한 생명의 비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7.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예수님은 약 2000년 전,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사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의 목적을 분명히 말합니다. 생명, 그리고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
풍성한 삶”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형편이 나아지고 문제가 줄어드는 삶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풍성함은 그보다 훨씬 깊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베드로를 떠올려 보십시오. 만약 그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실한 어부로 평범한 인생을 살다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삶은 거기까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 앞에서 그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순간부터 베드로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실패와 연약함도 있었지만,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풍성함입니다. 풍성함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환경은 거칠 수 있으나, 방향이 하나님께로 맞춰진 삶인 것입니다.

왜 우리는 풍성함을 누리지 못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시고, 우리 역시 그것을 원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우리의 고백은 솔직합니다. “
내 삶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도우심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길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식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종교의식은 중요합니다. 예배, 헌금, 기도, 절기… 이 모든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신앙을 담는 그릇입니다. 컵이 아무리 깨끗해도, 그 안에 물이 없으면 목을 축일 수 없는 것처럼, 의식이 아무리 충실해도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가 없다면 생명은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철저히 지켰고, 제물을 풍성히 드렸으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신앙생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향해 “
내가 신물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래된 부부가 같은 집에 살지만 대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함께 식탁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멀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관계의 형식은 유지되지만, 관계의 생명은 사라진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
친밀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단순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관념이 아닙니다. 철학도 아니고 종교적 개념도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지금은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얼굴을 보면 마음이 반응하며, 그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아는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음성에 민감해지고,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 다윗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는 많은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분을 사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적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현실적으로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미 수많은 계시와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고백은 분명했습니다. “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바울에게 예수님을 아는 것은 과거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갈망이었습니다. 마치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짜 사랑은 “이제 다 알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친밀함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질수록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전에,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비전입니다. 비전은 나의 꿈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것도,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것도, 모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어진 방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열심으로 이룬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풍성함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시편 23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삶이 얼마나 풍성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다윗이 추구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목자로 모셨고, 그 결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성한 삶을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목적 삼으면, 풍성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자.” “나를 더 알자.” “내 마음을 너의 마음으로 삼자.” 우리가 이 부르심 앞에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믿음으로 동행할 때, 그 길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안에서, 이론이 아닌 실제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