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2:14)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가 통해야 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반복되면 결국 관계는 멀어집니다. 외국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말을 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고, 삶의 자리와 문화, 사고의 깊이가 다를 때 우리는 말을 주고받고 있음에도 마음은 전혀 닿지 않습니다.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영적인 영역에서도 그대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실제로 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침묵하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외국어를 잘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입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나라에 ‘산다’는 것과 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미국에 수십 년을 살아도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 땅에 살고는 있지만 미국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한국 음식만 먹고, 한국 방송만 보며 살면 영어는 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고, 성경을 들고 있고, 신앙 용어를 사용하지만, 정작 성령과의 실제적인 교류가 없다면 성령의 언어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 산다고 말하면서도 성령께 말을 걸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인 ‘외국’에 살면서도 전혀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과의 교류에서 가장 핵심적인 통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성령 앞에 머무는 시간이며, 성령의 언어에 귀를 열어두는 태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는 성령과의 접촉 빈도를 높여 줍니다. 외국어를 매일 사용하는 사람과 가끔 책으로만 접하는 사람의 차이처럼, 기도의 지속성은 성령의 언어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줍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또 하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장부터 배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는 문법을 모르고, 문장을 완성하지도 못합니다. 단어 하나, 두 개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엄마”, “물”, “싫어” 같은 아주 단순한 표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서 언어의 감각을 몸으로 익힙니다.
성령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숙해 보이고 싶어 합니다. 복잡한 영적 체험, 깊은 계시, 거창한 언어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오히려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데 방해가 됩니다. 성령의 언어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한 단어, 한 이미지, 짧은 감동 하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수준을 인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고급 표현을 기대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국어 회화가 어려운 이유는 단어 때문만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직역하면 이상해지는 말들이 많습니다. 관용표현을 모르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언어 역시 그렇습니다. 성령은 상징과 비유, 이미지와 감동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상징의 세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성령의 뜻을 자기 생각대로 왜곡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성령께서 ‘광야’의 이미지를 주실 때, 그것은 버림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훈련과 정결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상징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즉시 부정적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단순함과 겸손함이 필수적입니다. 상징 하나, 이미지 하나를 통해 성령의 문화를 배워 가는 것입니다.
외국어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합니다. 배운 말을 실제로 써보지 않으면 절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틀릴까 봐 입을 닫아 버리면 언어는 늘지 않습니다. 발음이 엉망이어도, 문법이 틀려도 계속 말하는 사람은 결국 유창해집니다. 성령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적용이 서툴고, 판단이 흔들리고, 때로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순종하겠다는 태도는 오히려 순종을 지연시키는 핑계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삶 속에서 과감하게 적용해 보면서 우리는 무엇이 성령의 뜻이고 무엇이 내 생각인지 점점 분별하게 됩니다.
또한 언어의 핵심은 단어입니다. 단어를 많이 알수록 표현이 풍성해집니다. 성령의 언어에서 단어는 상징과 비유입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불, 물, 빛, 씨앗, 길, 문, 포도나무 같은 상징들을 마음에 저장해 두어야 합니다. 이것들이 쌓여야 단순한 표현에서 복합적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어에는 그 언어만의 문법이 있습니다. 단어가 하나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문장이 길어질수록 문법이 중요해집니다. 성령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시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 감각과 다른 차원에서 말씀하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다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논리와 경험으로 성령의 메시지를 재단하려 하면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영의 언어에도 초급, 중급, 고급 단계가 있습니다. 초급은 단순한 감동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단계이고, 중급은 하나님의 시각과 시간 개념을 배우는 단계이며, 고급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처럼 배우려는 태도, 성령과 자주 접촉하려는 삶, 그리고 서툴더라도 순종해 보려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말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대화하려는 마음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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