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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하나님과 친밀함 - 하나님과 친밀할 때 삶은 열매가 된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7.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요한복음 5:19~2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함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 그것이 믿음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가만히 돌아보면, 이 풍성한 삶이 마치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 교회에서 눈에 띄는 사역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나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야.”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보호와 인도하심은 소수의 엘리트 신앙인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이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단순히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성경이 약속한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구원하셨는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은 출발점이지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내 힘으로 해보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열심이 우리를 지치게 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의도로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성경을 몇 독 하겠다, 기도 시간을 꼭 지키겠다,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겠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지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왜 이렇게 힘들지?” “나는 왜 늘 제자리일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성경 읽기가 짐이 되고, 기도가 부담이 되고, 봉사는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집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을 하나님 없이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를 바라보셨고, 아버지의 행하심을 보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보다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하고, 결정하고, 추진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가져와 축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아주 근본적인 죄로 다룹니다. 아담의 죄, 곧 자기중심성의 죄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열심은 있지만 생명이 없고, 노력은 있지만 기쁨이 없는 신앙, 그것이 바로 생수의 근원을 떠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사역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시작됩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방주를 지어야지”라고 결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고, 노아는 그 말씀을 들었으며, 믿음으로 순종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을 드려 하나님께 감동을 주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을 맡겼고, 그 길을 따라갔을 뿐입니다.

여호수아 역시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영웅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상식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따랐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보이시고, 사람은 믿음으로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배를 만들 수도 있었고,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굳이 물이 넘치는 시기에, 법궤를 메고 들어가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수 4:24)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인간의 안전한 계산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주셨습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가 나타나셨듯이, 오늘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며 참된 사역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친밀함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애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의 걸음에 맞춰 한 발 내딛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 크기의 일을 이루시고, 그 결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앙이 열심에서 친밀함으로, 노력에서 의존으로, 자기 증명에서 하나님 드러냄으로 옮겨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