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와 ‘예언’ 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외국의 유명 사역자들을 초청한 컨퍼런스에서는 사람들이 신비롭고 특별한 경험을 얻고자 참석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많은 집회에 참석했는데도 내 삶이 정말 하나님께 더 가까워졌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먼저 교정되어야 할 ‘속사람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오해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라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겪습니다. 버려짐의 경험, 실패의 기억, 부모와의 갈등, 사람에게 받은 상처, 또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이 무의식 속에 쌓여 ‘내면의 구조’를 만듭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 구조는 마치 안경의 색처럼 모든 것을 고유의 방식으로 보게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에서도 이 왜곡된 안경이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침묵을 “날 버리신 것”이라 느끼기 쉽습니다.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작은 감동도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택하셨다”로 해석합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자신의 불안을 하나님의 경고처럼 오해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조용한 인도는 종종 내 상처의 메아리 속에 묻혀 버립니다. 성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귀가 아픈 것입니다.
속사람 치유는 심리치료보다 더 깊은 문제를 다룹니다. 요즘 ‘내적 치유’라는 말이 흔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속사람의 새로워짐(엡 4:23)이라고 말합니다. 심리치료가 감정의 회복이라면, 속사람 치유는 죄로 인해 왜곡된 마음의 구조 전체를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시는 일입니다.
속사람이 치유된다는 것은 단순히 “내 상처가 회복되었다”가 아니라, 왜곡된 감정이 말씀 아래 드러나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던 욕구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성령께서 마음의 질서를 새롭게 세우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기보다 먼저 그 음성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왜곡된 욕구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거쉬탈트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전경(앞에 보이는 것)’과 ‘배경(뒤로 밀리는 것)’을 구분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할 때, 마음에 가장 강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전면으로 떠오르고 다른 모든 것은 뒤로 밀려납니다.
이 구조는 영적 인도에서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갈망이 있을 때, 그 갈망이 전경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자 해도 사실은 내 욕구가 앞에 있고, 하나님의 뜻은 배경으로 밀립니다. 결국 떠오르는 생각·이미지·감동은 성령의 음성보다 내 욕구의 그림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떠올린 이미지가 강렬하기만 하면 쉽게 “하나님이 보여주셨다”고 믿어버립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지점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강렬함보다 고요 속에 흐르는 질서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이미지의 선명함’이 아니라 ‘마음의 정직함’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감정을 강제로 끌어올리거나 신비한 그림을 던져주시는 방식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통해, 양심을 통해, 평안을 통해, 성령의 조용한 조명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르게 세우십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치유될수록 하나님의 뜻은 더 조용하게, 더 분명하게, 더 안전하게 다가옵니다. 속사람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 지나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해결된 마음은 영적 귀를 가립니다. 삶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욕구는 기도할 때도 자꾸 전면으로 올라옵니다. 기도 중 떠오르는 미움, 잠잠하려 해도 손을 잡아끄는 걱정, 예배 중 밀려오는 비교와 열등감, 말씀 앞에서 계속 튀어오르는 왜곡된 욕구, 이것들은 성령의 인도를 막는 ‘소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이 소음 때문에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먼저 마음의 질서를 세우시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신 주님의 약속은 단지 도덕적 청결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질서를 말합니다.
성령의 음성보다 먼저 성령의 손길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성령의 손길, 즉 속사람의 치유를 원하십니다. 왜곡된 감정을 드러내고, 해결되지 않은 욕구를 내려놓고, 마음의 안경을 벗어내고, 더 이상 내 상처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흉내내지 않도록…
이렇게 속사람이 주님의 손에 의해 교정될 때, 비로소 성령의 음성은 명확해지고, 우리의 길은 밝아지며, 주님의 뜻은 혼란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립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길을 비추는 빛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빛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문이 닫혀 있었을 뿐입니다. 성령께서 오늘 그 창문을 열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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