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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성령, 인격이자 능력이신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

우리는 흔히 성령을 말할 때, 두 가지 극단으로 나뉘곤 합니다. 한쪽은 성령을 인격적 존재로만 이해하며, 감정이나 능력의 나타남을 경계합니다. 다른 한쪽은 성령을 능력과 현상으로만 이해하며, 뜨거운 체험을 신앙의 전부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성령은 그 어느 한쪽에도 갇히지 않습니다. 성령은 인격이시며 동시에 능력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단순한 힘이 아니며, 그렇다고 우리의 예의를 지켜야만 다가오시는 분도 아닙니다. 성령은 자유로운 영이시며, 바람처럼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분이십니다(요 3:8).

일부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
성령은 인격이지, 감정이나 능력의 작용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은혜는 품위 있게 받아야 한다. 울고 웃고 쓰러지는 건 천박하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너무 인간적인 체면의 기준으로 재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고상함보다 순전함을 원하십니다. 은혜를 받는 순간 체면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에 닿는 순간, 그 충격에 무너지고 엎드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언약궤가 돌아올 때, 왕의 옷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었습니다. 사람들은 “
왕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했지만 하나님은 그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삼하 6:22). 하나님은 고상한 자세보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춤추는 마음을 더 귀하게 보십니다.

반대로, 성령의 능력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방언, 신유, 기적 같은 체험을 성령의 전부로 여깁니다. 그러나 능력은 언제나 인격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능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통로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능력 이전에 사랑과 긍휼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이 병자를 고치신 것은 기적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나 단순한 흥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덮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뜨겁게 울고 웃고 고백하는 이유는 그분의 거룩한 사랑이 우리 안의 죄와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불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없다고 요한은 말했지만(요일 1:5), 그 어두움이란 죄의 어두움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고난의 어두움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기다림을, 요셉에게는 감옥을, 다윗에게는 도망의 세월을 주셨습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더 깊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만큼, 그 영광에도 참여한다”(롬 8:17)고 말했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불은 따뜻함만이 아니라, 우리를 정결하게 태우는 소멸의 불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분으로 떡을 구워 먹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겔 4:12). 그는 놀라며 항변했습니다. “
주여, 나는 평생 부정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항변을 받아들여 짐승의 배설물로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너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순종할 수 있느냐?” 에스겔은 체면보다 순종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이성이나 품위를 넘어 역사하십니다.

이사야는 벗은 몸으로 거리를 다녔고, 사울은 벗은 채 예언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조롱했지만
그들의 행동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방법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때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했을 때, 사람들은 제자들을 “
술에 취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성령의 충만이었습니다.

성령은 단순히 이성의 하나님이 아니라,
감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눈물을 닦아주시며,
부드럽게 위로하시는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그래서 감성이 풍부한 이들은 성령의 감동을 더 쉽게 느낍니다. 그분은 논리로 이해되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체험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성으로 무장한 사람은 이 감동을 불편해하지만, 성령은 그들의 지성의 문턱을 넘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으로 찾아오십니다. 어쩌면 성령은 이렇게 말씀하시는지도 모릅니다. “
조용히 앉아 나를 설명하려 하지 말고, 그저 나를 사랑하라. 나의 품에 안기라.

결국 성령은 인격이자 능력, 사랑이자 불, 위로이자 변화의 바람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지혜를 얻고, 능력을 받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무조건 열광주의일 필요는 없고, 조용하다고 해서 반드시 경건한 것도 아닙니다. 성령은 다양하게 역사하십니다. 다윗처럼 춤추는 사람에게도, 마리아처럼 조용히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면을 내려놓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
성령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라도 좋습니다. 저를 만나 주시고, 제 안을 태워 주옵소서. 당신의 인격과 능력으로 저를 새롭게 하옵소서.

성령은 고상함의 기준으로 가둘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때로는 우리의 품위를 무너뜨리며, 죄인의 가면을 벗기고 진실한 눈물을 흘리게 하십니다. 그 눈물 속에서, 그 웃음 속에서, 그 쓰러짐과 고백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지시고 새롭게 빚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울든, 웃든, 침묵하든, 그 모든 순간 속에 성령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분은 인격이시며, 능력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