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의 아들은 이러하니, 곧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이니라.”(민수기 3: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특별히 레위 지파를 택하셔서 자신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위해 무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손은 성막을 붙들고 하나님을 모시는 일에 헌신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한 가지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지키라.”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 그들의 이름과 맡은 일에는 단순한 역할 이상의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게르손 이라는 이름의 뜻은 “나그네”입니다. 게르손 자손의 임무는 성막의 휘장과 덮개를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하나님 임재의 공간을 감싸는 천, 즉 구별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임하시는 거룩한 영역과 세상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의 영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게르손은 “이 땅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들의 사명은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에 안주하지 않는 영혼에게만 자신의 임재를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아브라함처럼, “그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며,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였다.” 게르손의 영성은 바로 이런 본향을 향한 영성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으려 할 때, 성막의 덮개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자리는 세상 안락의 중심이 아니라, 나그네의 마음 위에 세워진 장막입니다.
두 번째 아들 고핫의 이름 뜻은 “모임, 연합”입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성막 가운데서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 진설병상, 등잔대, 분향단, 즉 하나님의 임재, 말씀, 성령의 빛, 기도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배의 핵심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장 강하게 임하는 자리는 연합된 예배의 중심입니다. 고핫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하나님은 “모인 곳”, “하나 된 자들 가운데” 임하십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이 흩어진 자들에게 임하지 않고, “한 곳에 모여 있을 때”(행 2:1) 임하셨습니다. 예배는 혼자가 아니라, 주 안에서 연합한 지체들이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그 절정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민수기 3장의 셋째 아들 므라리는 “쓰라림” 혹은 “견고함”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는 성막의 기둥과 받침, 기초를 지탱하는 구조물을 담당했습니다. 성막은 휘장만으로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 기초를 붙들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튼튼한 뼈대가 있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아름답게 세워지려면, 묵묵히 지탱하는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붙드는 사람들이 바로 므라리의 자손입니다. 그들의 헌신이 있을 때, 교회의 예배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133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 연합의 자리에 무엇이 흐르는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이 구절은 놀라운 영적 질서를 보여줍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부어진 성령의 기름이, 그분의 몸인 교회 전체로 흘러내리는 장면입니다.
‘수염’은 히브리어로 ‘장로’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집니다. 즉, 성령의 기름 부음은 그리스도 → 지도자 → 성도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교회 질서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와 연합이 바로 하나님이 “복을 명령하신 곳”, 곧 “영생의 자리”입니다(시 133:3).
우리가 함께 예배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곳에 주님이 오십니다. 그분은 단지 예배의 대상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함께 예배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 2:12)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중심에서 예수님이 직접 찬양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이 우리의 찬양 속에 섞여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때 예배는 단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의 교통이 됩니다. 그것이 곧 예배의 영광의 절정입니다.
시편 118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라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이 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 곧 주님의 날입니다. 이 날은 단순한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쁨의 축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얻은 자들이 새 생명의 찬양으로 모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하지 말라”의 날이 아니라
“기뻐하라”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이 날을 복되게 구별하셨고, 그 안에서 연합한 교회에게 영생의 복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로 모일 때 영광이 임합니다. 게르손처럼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가며,
고핫처럼 예배로 연합하고, 므라리처럼 묵묵히 교회를 붙드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보이십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워질 때,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성막이 됩니다. 그곳에 주님이 함께 예배하시고, 그곳에 하늘의 기름 부음이 흘러내리며, 그곳에 하나님이 복을 명령하십니다. 곧 영생의 복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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