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전서 14:33)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교회 안에서는 성령의 은사나 능력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기도원이나 부흥회 같은 특별한 모임에서는 놀랍도록 자주 일어날까?”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도, 혹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교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기도원에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언을 처음 말하게 된다든가, 뜨거운 눈물과 함께 마음이 녹아내리는 체험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오면, 그 뜨거웠던 마음은 금세 식어버립니다. 마치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이 오는 것처럼, 영적인 ‘요요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성령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믿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입니다. 어떤 이는 깊은 신앙의 세계를 경험했지만, 또 어떤 이는 여전히 신앙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만약 이런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무분별하게 일어난다면, 교회는 고린도교회처럼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교회의 영적 수준과 성숙도에 맞게 성령의 역사를 조절하십니다. 성령은 결코 무질서의 영이 아니시며, 공동체를 보호하시는 질서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잘 일어나는 환경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기도원이나 부흥회 같은 곳은 특정한 성향과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감성적이며, 은혜를 갈망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 마음들이 한데 모여 강한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반면 일반 교회는 다릅니다. 보수적인 교단의 교회에는 이성적인 사람, 감성적인 사람, 아직 믿음이 약한 사람 등 다양한 형태의 성도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한 가지 방향의 영적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령의 역사는 종종 ‘특별한 집회’에서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과 사역원의 목적은 다릅니다. 기도원이나 영성훈련원은 능력 행함과 치유 사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곳에는 ‘능력 행하는 천사들’이 사역자들과 함께 역사합니다. 반면 교회는 가르침과 양육, 말씀의 훈련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지혜의 영’이 더 많고, ‘능력의 영’은 상대적으로 제한됩니다.
이 차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조적인 질서 때문입니다. 교회는 한순간의 기적보다, 성도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진리 위에 굳건히 세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성령의 또 다른 특징은 분위기를 타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성적이시고, 부드럽고, 정서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 현실은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입니다. 목회자부터 권위의식에 묶여 있고, 예배 분위기는 차갑고 형식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성령은 숨이 막히십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이 따뜻한 조명 아래서 사랑을 나누듯, 성령도 사랑과 경외가 흐르는 영적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임재는 억지로 끌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편히 거하실 수 있는 ‘그윽한 사랑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르침과 은혜’를 조화시켜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단회적인 이벤트로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은사를 경험한 성도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헌신하고 섬겨야 할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은 많은 교회가 외부 강사를 초청해 단회적인 집회를 엽니다. 그 순간의 감동은 크지만, 의미를 해석해 줄 목회적 안내가 없습니다. 결국 은혜는 감정으로 끝나고, 헌신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은사는 목적 있는 은혜입니다. 그 목적은 ‘자기 변화’와 ‘이웃 섬김’이며, 성령의 경험은 교회의 거룩함과 복음 사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사랑은 영적 안정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에게 사랑의 확신을 줍니다. 사랑받는 자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가정의 사랑이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듯, 성령의 사랑은 신앙인에게 영적 안정을 줍니다.
성령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날마다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혼자서 그 사랑을 깊이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경건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사모할 때, 그 사랑은 공동체 안에 강력히 흘러넘칩니다.
성령이 거하실 교회를 세우십시오. 이제 교회는 단회적 체험을 넘어서 성령께서 항시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자유롭게 숨 쉬실 수 있는 교회, 사랑과 순종과 경외가 어우러진 교회, 그곳에서야 비로소 하늘의 능력과 지혜가 함께 흐를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그분을 사모하고 맞이할 준비가 된 모든 공동체에게 열려 있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교회를 그분이 편히 머무실 수 있는 사랑의 집으로 세워야 합니다.
“성령은 부드러운 바람처럼 임하시지만, 그분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생명이 피어납니다.” 이제 우리의 교회와 마음이 그 생명의 바람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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