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에 빠집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우리가 기대한 방향이 아닐 때, 성경을 붙들고 살아가려 애썼는데 결과가 실패처럼 보일 때,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하시는가?” 성경은 이 질문이 오늘의 신자만의 고민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하나님 백성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했고, 예언을 암송했으며, 오랜 세월 고백을 다듬어 왔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한 메시아는 ‘마굿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생각 속 메시아는 성전에서 등장했어야 했고, 권력의 중심에서 선포되었어야 했으며, 기득권을 전복할 만큼 위엄 있는 방식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마굿간, 피 냄새와 짐승 냄새가 섞인 가장 낮은 자리, 사람들의 시선에서 밀려난 처녀 마리아의 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밤, 문제는 예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이 틀린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교리를 정리하고,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신앙 고백을 만들어냅니다. 보편적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 말문이 막힙니다. "이 실패는 하나님의 뜻인가? 이 관계의 깨어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선택은 순종이었는가, 착각이었는가?" 우리는 원리를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판단하지 못합니다. 개괄은 알지만, 적용에서는 주저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각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려고 뜻을 감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항상 우리의 기대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 것입니다. 기도는 거래가 되고, 신앙은 계산이 됩니다.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붙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를 낮추기 위해서, 우리 생각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해서, 우리 안에 숨은 교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언어는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부인을 통해 배웁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그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복종의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목적이 더 정확한 판단이 아니라 더 낮아지는 데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그 언어를 오해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의 길로 이끄십니다. 기도하고 순종했다고 믿었는데 결과는 참담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두 갈래 길 앞에 섭니다. 성령의 음성 자체를 의심하거나 나의 겸손을 점검하거나 대부분 우리는 첫 번째 길을 택합니다. “이건 하나님이 아니었어.” “아마 내가 착각했을 거야.”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실패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목이 굳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율법을 누구보다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들이 문제였던 이유는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롭게 주어지는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말은 늘 그들의 기존 이해와 충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지자를 거부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른 말씀은 쉽게 배척합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결과는 “마귀의 역사”로 치부합니다.
우리는 다수의 선택이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경고를 합니다. 좁은 길은 찾는 자가 적다고,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종종 외롭고, 불확실하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실패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나태합니다. 처음엔 열심이지만, 어느 순간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이 상태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한 패턴을 흔드십니다. 실수를 허락하시고, 익숙한 방식이 통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각성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 음성을 항상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두 사람을 모두 보여주십니다. 음성을 듣는 삶, 마음이 하나님께 향한 삶을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던 이유는, 우리를 멀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데려가시려는 것이었음을 말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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