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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성령의 언어 - 성령의 음성과 실패의 신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10)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하며 어떤 결단을 내립니다. 기도 중에 분명한 감동이 있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음성이 틀릴 리 없다고 믿게 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틀려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고 거짓이 없다는 신앙적 확신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들은 ‘성령의 음성’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음성에 순종했는데, 결과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과 전혀 다르게 나타날 때입니다.
“순종했는데 왜 이런 일이?” 한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승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자리였고, 가족의 생계도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반복적으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내려놓아라.” 그는 처음엔 그 생각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기도할수록, 예배 중일수록 그 감동은 더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그는 이것을 성령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큰 결단 끝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예비하셨을 것이다.’ ‘적어도 이 결단 때문에 삶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새로운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통장은 바닥을 드러냈고, 가족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그의 신앙은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까?” “내가 착각한 건 아닐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이 질문은 믿음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말씀’‘결과’를 결부시킵니다. 우리가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특정한 결과를 자동으로 연결시키는 습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면 →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 결단을 하면 →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이 방향이라면 →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 자체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의심해야 할 것은 말씀이라기보다, 말씀에 덧붙여진 우리의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잭 디어가 소개한 헌금의 사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아무런 계산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헌금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종은 즉각적인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몇 달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당시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결단은 실패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 그 사람 안에 더 깊은 신뢰를 빚어가셨고, 훗날 그가 그날의 선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언제나 단기적인 결과에 있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결단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더 크게 드러납니다. 특히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과정보다는 즉각적인 해결을 기대합니다. 한 가정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무너진 가정,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예배 가운데 여러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들었고,
“지금 당장은 변하지 않아도 결국 회복될 것”이라는 권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결국’이 아니라 ‘지금’이었습니다. 남편의 일시적인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 이후에 찾아온 고통은, 어쩌면 처음의 문제보다 더 깊고 길었습니다. 몇 년 뒤 남편은 진심으로 회개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상처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혼란을 허락하시는가?” “차라리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지 않은가?”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분명하게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반어적으로, 때로는 모호하게, 때로는 실패를 통과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이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계속되는 성공은 우리를 쉽게 교만하게 만듭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사람이다.” “나는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다.” 이런 생각은 아주 미묘하게 하나님보다 자기 경험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반면 실패는 우리를 낮추고, 신중하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의 음성을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처럼 사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언어는 그런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우기 위한 언어입니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과를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이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 안에서 우리의 걸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양심을 속이지 않았고,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이해한 순종조차도 헛되게 두지 않으십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항상 옳은 선택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얻지 못한 것보다, 내가 잃은 것보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어떤 즉각적인 성공보다도 훨씬 더 값진 은혜가 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