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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혼의 어둠에서 영의 빛으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5~6)

가난하든 부유하든, 건강하든 연약하든, 높이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인간의 생은 예외 없이 고난과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어떤 이는
“그래도 나는 별로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인생의 허무를 토로하고, 또 어떤 이는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도 “왜 이렇게 공허한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겉모습은 정반대이지만, 그 마음의 결론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생은 덧없고, 손에 쥔 것들은 오래 머물러 주지 않습니다.

더욱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우리는 종종 혼란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말씀과 기도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맛보기도 하지만,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늘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나는 과연 자라고 있는가?”, “영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제 같던 날들이 어느새 수십 년 전의 일이 되어 버리고, 인생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와 허무 속에 빠지곤 합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빛 안에서 보면, 이러한 상태는 삶 자체의 본질이라기보다 하나님을 떠난 혼의 상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집에 돌아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고, 집에 와서는 밀린 일과 인간관계의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마음은 쉬지 않습니다.
“내가 이만큼 살아서 뭐가 남았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 순간 그는 가난해서도, 실패해서도 아닌데 깊은 허무 속에 빠져 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혼의 작용입니다. 혼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계산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이 혼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문제는 혼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작동할 때, 그 결론은 언제나 어둠과 사망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이 좋아도 불안하고, 무언가를 얻어도 만족하지 못하며, 심지어 영적인 체험을 한 뒤에도 다시 허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인간 안에 자리 잡은 상태론적 사망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말씀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된 마음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혼의 어둠 속에 빠질 때마다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혼의 어둠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방향을 확인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고요히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마음이 향하는 곳이 곧 우리가 머무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세상의 계산과 염려를 향하면 혼의 세계에 머물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면 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어느 새벽, 답답한 마음을 안고 교회에 나와 텅 빈 예배당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성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특별한 말도 나오지 않고, 기도다운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이라는 짧은 부름만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생각의 소음이 잦아듭니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스며듭니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영의 세계입니다.

영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속받았다는 진리를 마음으로 누립니다. 그리고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생명에서 생명으로 흐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속을 받았지만, 아직의 시간 속에서는 여전히 세상의 수고와 고난을 겪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혼 안에 머물면, 사망에 속한 생각들만 가득해집니다. 육의 생각은 곤고와 염려, 두려움과 공허를 낳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롬 8:6).

영의 생각이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영적 전쟁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말씀의 빛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과 혼돈, 개인의 마음속 싸움과 세상의 갈등은 모두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 사이의 영적 전쟁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 안에서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영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현실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11). 이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깨어 있음의 길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기도는 단순히 무엇을 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의 깊은 의미는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가 물드는 상태, 하나님과 교감하는 자리입니다. 이 상태를 견지할 때, 우리의 마음은 혼에 끌려다니지 않고 영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는 말씀은, 하루하루를 영의 의식으로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매일 만나를 먹지 않으면 광야에서 살아갈 수 없듯이, 우리는 매일 영의 만나와 생수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영 안에 들어가 그 생명수를 마실 때, 우리는 마치 물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생명에 잠깁니다. 그러면 그 생명을 마시고 또 마시며, 마음에 빛이 어리고 생명이 흐릅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생의 길에서 혼 안의 사망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영 안에서 생명과 평안을 회복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영으로써 육을 다스리고, 유일한 참 소망인 하늘을 바라보며, 남겨진 소명의 길을 걷는 여정입니다. 이 길이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생명이 흐르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생을 살아가기를, 혼의 어둠에서 영의 빛으로 날마다 옮겨지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