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령과 기름부음

성령의 가르침 - 바울의 복음과 우리의 배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31.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일서 2: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며 남기신 말씀은 위로이자 약속이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오랫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 왔습니다. 동시에 오해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기도만 하면 성령께서 다 알려 주시는 것 아닐까?’ 바울의 삶과 가르침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고도 균형 잡힌 답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늘 의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도 않았고, 갈릴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제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었고, 학문적 배경은 철저한 유대교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는 늘 이런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바울은 자칭 사도일 뿐이다.” “예수를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무슨 복음을 전한단 말인가.”

바울 자신도 이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의 출처를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한다.”(고전 2:13)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신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을 두 단어로 설명하셨습니다. 가르치신다, 생각나게 하신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가르치신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던 것을 알려 주는 일도 포함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계시는 분명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복음의 핵심을 계시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영역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주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처녀들에 관해서는 주께 받은 명령이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고전 7:25) 바울은 성령의 계시와 자신의 판단을 섞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놀라울 만큼 정직하고 신학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미 배운 것, 이미 경험한 것을 그 순간에 정확히 꺼내 주시는 사역입니다. 마치 잘 정리된 창고에서 필요한 도구를 정확한 시간에 꺼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 세 번이나 자신의 질병이 떠나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신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이런 명확한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이 조롱거리가 되고, 세상의 가장 미련한 자처럼 취급받는 현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 내놓으신 것 같다.”(고전 4:9 요지)

여기에는 직접적인 계시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씀과 경험과 신앙적 분별을 통해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그의 이런 판단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은 계시만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생각하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오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나는 사람에게 배우지 않는다.” “교리는 죽은 지식이다.” “신학은 성령을 제한한다.” “기도만 하면 된다.” 겉으로 보면 매우 영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사실 이는 가장 위험한 태도입니다. 바울은 철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했고, 성경을 문자 하나까지 외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버린 것은 교육 자체가 아니라 형식주의였습니다. 그는 배움을 거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배움을 성령 안에서 재해석했습니다.

즉흥성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허락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종 오해됩니다. 즉흥적이라는 말은 준비 없이 무책임하게 충동적으로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숙련된 기술자는 도면 없이도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면을 수천 번 보아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펄전과 로이드 존스 목사님 처럼 원고 없이 설교했던 이들은 신학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더 깊이 묵상했습니다. 즉흥성은 게으름의 열매가 아니라 축적의 열매입니다.

성령은
“빈 손”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지만, 사람을 통해 일하실 때는 사람이 쌓아 둔 것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이 없으면 생각나게 하실 것도 없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적용할 것도 없습니다. 배움이 없으면 분별할 재료도 없습니다. 성령은 지식의 창고를 채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채워진 창고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꺼내시는 분입니다.

다섯 처녀는 등만 들고 나갔고,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기름은 성령이지만, 기름을 준비하는 책임은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 선배 신앙인에게 배우는 일, 신학과 교리를 공부하는 일, 삶의 경험을 성찰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독단의 영이 아닙니다. 그분은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스승과 제자,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서로 질문하고 배우는 관계 속에서 성령은 가장 풍성하게 역사하십니다. 사람을 통해 배우지 않겠다는 태도는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태도가 됩니다.

성령의 가르침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비한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배움 위에, 깊은 묵상 위에, 겸손한 관계 위에, 순종의 삶 위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임합니다. 우리가 충실히 배우고, 성실히 쌓아 두고, 겸손히 관계 맺을 때 성령께서는 바로 그 시각에, 가장 적절한 말씀을, 가장 살아 있는 지혜로 우리의 입과 삶을 통해 흘려보내실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