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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온전해지는 길로 인도하기 위한 영적 경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7.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4)

사람의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이 보입니다. 잘나가던 때가 있는가 하면, 주저앉는 순간도 있고, 다시 회복되는 때가 옵니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흥망성쇠라고 불렀고, 자연은 언제나 이 순환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과 겨울이 오듯, 모든 생명은 순환의 고리 속에서 자라고 사라집니다. 영적인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 역시 직선으로만 자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르락내리락하며,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깊은 평안을 경험하면서 성숙해 갑니다.

우리는 모두 육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먼저 육신으로 태어나고, 육신의 세계를 배우며 살아갑니다. 밥을 먹는 법, 말을 하는 법, 공부하는 법, 경쟁하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삶의 우선순위도
‘육의 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신앙도 처음에는 비슷합니다. 처음 교회를 다닐 때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믿으면 형통해질까?” “이 신앙이 내 삶에 어떤 유익이 있을까?” 이 단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먼저 젖을 찾듯, 처음에는 신앙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아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어린아이같이 말하고 어린아이같이 이해하고 어린아이같이 생각하였으나…”(고전 13:11) 문제는 성장이 멈출 때입니다. 어른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사고는 여전히 어린아이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성숙하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변화는 사춘기처럼 혼란스럽습니다. 사춘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제까지 아무 관심 없던 이성에게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감정이 폭발하고,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반복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몸이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무언가 자라고 있는데, 그것을 설명할 언어도, 다룰 지혜도 아직 없는 시기입니다.

영적 경험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말씀이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합니다.
“내가 이상해진 걸까?” “이게 진짜 성령의 역사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지?” 예수님은 이 상태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처음 성령의 바람을 맞는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흔들림이 아니라, 이 흔들림을 설명해 줄 어른이 없을 때입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조용히 해라”,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라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란은 더 깊어질 뿐입니다. 영적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경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적 경험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영적 경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영적인 체험가’로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성숙입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 바람을 맞고, 비를 맞고, 계절을 통과하듯, 우리의 속사람도 영적 경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춘기를 겪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변해도 책임을 배우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고, 영적 경험을 해도 사랑을 배우지 않으면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10) 예언, 방언, 지식… 이 모든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는 도구이지,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면 늘 은혜 충만할 것이다.” “온전해지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어떤 날은 기도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어떤 날은 말씀을 읽어도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어제는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연약한 죄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실패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육과 영이 함께 존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지금”“그 때”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어떤 날은 어린아이 같고, 어떤 날은 주님의 얼굴을 대하듯 온전합니다. 문제는 흔들림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바울은 결국 모든 논의를 여기로 가져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사랑은 영적 경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초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은사는 소음이 되고, 사랑이 없으면 지식은 교만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연약한 날에도 믿음이 남고, 혼란 속에서도 소망이 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우리는 완성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완성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다양한 영적 경험들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으로 묶인 온전함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흔들릴 때 좌절하지 마십시오. 미숙함을 발견할 때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부분적 앎’은, 온전함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이라는 띠로 삶을 묶어 가며,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알듯,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