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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영은 누구의 지배를 받는가 - 거듭남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9)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단순한 육체로만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 이 세 영역으로 구성된 존재로 증언합니다. 육은 눈에 보이는 영역입니다. 시간 속에서 늙고 병들고 결국 사라지는 그릇입니다. 혼은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는 영역, 곧 우리의 자유의지가 작동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가장 깊은 중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 외모, 성공, 환경…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영과 혼이며, 그중에서도 인간의 삶과 영원을 결정하는 핵심은 영입니다. 혼은 육을 움직이지만, 영은 혼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은 혼의 지배를 받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한 대로 몸은 움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다릅니다. 영은 결코 혼의 지배를 받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혼이 영을 지배한다는 것은, 신하가 왕을 통치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만약 영이 혼의 지배를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창조질서는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영이 육을 이탈해 떠돌아다니고, 타인의 삶을 엿보고, 다른 몸에 들어가 생명을 연장하고, 귀신과 교류하며 악을 도모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성경의 세계관이 아니라, 공상과학이나 무속, 오컬트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한 질서의 장치를 두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육과 혼을 먼저 지으시고 마지막에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만 움직이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의 영만큼은 결코 사람 마음대로 다룰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등장합니다. 산 영과 죽은 영, 곧 깨어 있는 영과 잠자는 영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영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혼과 육으로만 살아갑니다. 도덕도, 종교도, 신념도 모두 혼의 활동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사람의 영과 연합하실 때, 잠자던 영이 깨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거듭남은 종교적 결심이 아닙니다. 윤리적 각성도 아닙니다. 내가 결단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영을 살리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혼은 자유의지의 자리이기에, 누구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혼은 항상 마귀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생각을 심습니다. 욕망을 자극하고, 분노를 키우고, 질투를 부추킵니다. 사람이 그 생각에 동의할 때, 죄는 행동이 되고, 반복되면 중독이 됩니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귀신이 역사합니다.

성경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은 최후의 방어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살지 못합니다. 양심과 악한 충동이 싸우지만, 결국 더 강한 쪽에 끌려갑니다. 그래서 잠언은 말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께 인도받는 사람은 죄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죄를 즐기지 않습니다. 죄에 머물지 않습니다. 혹 넘어질 수는 있으나, 곧바로 돌이켜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는 잔잔하지만 분명한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반대로, 성령의 열매 없이 육의 열매만 지속적으로 드러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성령께서 거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혼으로도 예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 문화로, 전통으로 얼마든지 예수를
“훌륭한 분”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접이 아닙니다. 혼은 이 땅을 떠날 때 사라지는 영역입니다. 혼의 동의로는 영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참된 영접은 성령께서 내 영을 깨우시고, 깨어난 영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남은 쉽지 않습니다. 정욕을 포기해야 하고,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며, 자기 부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이 길은 고통스럽습니다. 해산의 아픔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말씀 없이 주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이 머리를 스칠 때가 아니라, 심장을 찌를 때 사람은 비로소 주님을 찾게 됩니다. 지금 숨 쉬는 이 순간이 주님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호흡이 멈추면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혼의 종교를 내려놓고 영이 살아나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거듭남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