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알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내게 너무 기이하여 알 수 없던 일을 말하였나이다”(욥기 42:3)
성령의 언어를 성숙하게 듣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중요한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는 사실을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진리는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니라, 삶에서 피 흘리며 배워야 하는 언어이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다름’이 우리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깨달음으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처절한 실패, 기대의 무너짐, 기도의 좌절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우리가 간절히 붙들었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질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더 깊이 나아가고,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믿음을 내려놓습니다.
우리는 대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병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녀의 문제 앞에서, 생계의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은근한 기대를 품습니다. “이 정도로 기도했으니…”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그 충격은 상상 이상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일로 믿음을 잃고, 어떤 이들은 교회를 떠나며, 어떤 이들은 지도자와 신령한 세계 자체를 불신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는 언제나 비싼 수업료가 따릅니다.
오래전, 암 말기로 절망의 끝에 서 있던 한 여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거액의 헌금을 바쳐 유명한 치유자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마음은 더 무너졌습니다. 담임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했지만, 돌아온 말은 “나는 치유의 은사가 없다”는 냉정한 거절이었습니다.
10년 넘게 헌신했던 교회에서, 절망의 순간에 위로조차 받지 못한 그 가족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교회를 떠났고, 여 집사는 하나님께 대한 기대마저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빨리 죽고 싶다.” 그때 이웃의 부탁으로 우리는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만남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간청으로 잠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뼈만 남은 몸, 깊이 패인 눈, 복수로 만삭처럼 부풀어 오른 배, 고통 때문에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치유’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무너진 믿음이 세워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여셨고, 여 집사의 영혼에 다시 소망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육신은 여전히 연약했지만, 하나님은 일주일의 시간을 더 허락하셨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그녀는 통증 없이 가족과 웃으며 이야기했고, 다시 찬양했고, 감사했고, 아주 평온하게 주의 나라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절망을 고치셨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집사님의 가정에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40대 중반의 남편이 폐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슬픔을 감당할 틈도 없이, 대학생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학교를 등지고, 집을 나돌았습니다. 어머니는 울며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그때 그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이 아이는 반드시 주님의 일꾼이 됩니다.”
그 말은 쉽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현실이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방황의 계절이 지나고, 딸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깊은 은혜를 경험했고, 부르심을 받아 신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주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성령의 언어는 단기간에 익혀지는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언어이며, 기다림의 언어이고, 침묵 속에서 배우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때로 목숨이고, 때로는 가족이며, 때로는 전부라 여겼던 것들입니다.
우리는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아픔이 깊어집니다. 그러나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갑니다. 고통을 단순히 실패나 징계로만 해석한다면, 우리는 성령의 언어에 평생 문외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분이 아니십니다.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라고 요구합니다. 조급한 결론은 성령의 언어를 배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그 자리는 믿음의 끝이 아니라 성령의 교실이 됩니다. 그 교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언제나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성령의 언어를 알아듣게 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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