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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 하나님은 왜 그것을 사용하실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이 생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일까?” “이 느낌을 따라가도 되는 걸까?” 어떤 이는 말합니다. “느낌은 믿을 게 못 된다. 감정은 변덕스럽고, 생각은 부패했기 때문이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고, 생각은 쉽게 오염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쓸 수 없는 것’을 골라 쓰십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쓰신 재료는 늘 놀랍습니다. 모세는 말이 어눌했고, 다윗은 막내였으며, 베드로는 충동적이었고,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잘 정제된 사람을 고르지 않으셨습니다. 부패한 인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안에서 일하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느낌과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나기 이전의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우리 안에 거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왜 우리의 느낌과 생각만은 사용하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귀에 들리는 음성보다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들리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입니다. 오히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대부분 믿음을 통해,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중에 어떤 성경 구절이 문득 떠오르거나,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듭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돕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흔히 이렇게 치부합니다.
“그냥 내 생각이겠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느낌은 훈련되지 않았을 뿐, 버려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느낌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칼이 위험하다고 해서 칼 자체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느낌과 생각은 통제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으로 튑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점심 메뉴가 떠오르고 어제 들은 말이 다시 재생되고 해야 할 일 목록이 줄줄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기도 체질이 아니야”라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문제는 재질이 아니라 훈련의 부재입니다.

어느 성도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눈을 감자마자 생각이 폭주합니다. 처음엔 억지로 막아보지만, 곧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한 장면을 붙잡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자신, 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한 구절입니다. 그 장면을 흐릿하게 두지 않고 선명하게 붙듭니다. 생각이 벗어나려 하면 다시 그 자리로 데려옵니다.

이것은 불교의 무념무상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생각을 채우는 것입니다. 말씀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이렇게 말씀에 생각을 고정하고 10여 분이 흐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말씀이 그냥 글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떤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고 그 단어가 지금의 내 상황과 연결되고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 뒤에 또 다른 생각이 따라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별입니다.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믿지도 말고, 무시하지도 마십시오. 분석하십시오. 그리고 질문하십시오. 이 과정이 바로 기름부음을 입은 식별, 주님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왜 회개가 먼저 떠오를까요? 조용히 주님 앞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오래된 죄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혹은 용서하지 못한 얼굴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 이렇게 말합니다.
“괜히 기분만 상했다.” 그러나 이것은 방해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성령님은 더 깊이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정리되지 않은 방을 보여주십니다. 회개가 이루어지고, 쓴뿌리가 제거되면 마치 공기가 바뀌듯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때 성령의 충만이 임합니다.

성령의 충만과 주님의 임재는 다릅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를 정결케 하고 주님이 일하시기 좋은 상태로 만듭니다. 주님의 임재는 그 다음입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교제이며 가르침과 계시가 동반됩니다. 성령님은 주로 위로하고 상담하십니다. 주님의 영은 가르치고 밝히십니다. 둘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제거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가져오너라. 내가 그것을 정결하게 하겠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겠다.” 느낌과 생각을 주님께 드리는 사람은 점점 그것들이 주님 안에서 길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깨닫게 됩니다.
“아, 이건 그냥 내 생각이 아니었구나.” 그때부터 믿음은 머리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