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4:1~7
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편 14편은 다윗의 탄식이자 고발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시편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태도는 단순히 종교적 무신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삶에서 지워버리고, 오직 자기 욕망과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교만한 모습 전체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을 굽어보시며, 혹시라도 하나님을 찾는 지각 있는 자가 있는지 살피신다고 말합니다(2절). 그러나 결과는 참혹합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3절). 인간의 타락과 부패는 보편적이며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 고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발전을 이끌어 온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이 되어 버렸을 때, 인간은 탐욕의 노예가 되고, 자연과 사회를 끝없이 착취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홍세화는『생각의 좌표』에서 “자본주의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 그 결과 언젠가 자연의 반란과 붕괴를 우리가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회 비평이 아니라, 시편 14편이 말하는 “하나님 없는 세상”의 현주소와 겹쳐 보입니다.
다윗이 지적한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삶을 합리화하며 죄악을 즐기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떡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면서도 여호와를 부르지 않습니다(4절).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이 바로 이 모습 아닐까요? 자본을 위해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마구잡이로 착취하는 체제 말입니다.
우리가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의 파괴 속도는 자연의 회복 능력을 훨씬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결국 이길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그 자연과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탄식처럼, 하나님 없는 길을 가는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소망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7절). 인간의 부패와 탐욕이 아무리 깊다 해도,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가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태도는 겸손입니다. 자본을 의지하는 교만을 버리고, 창조주 앞에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도, 인간도, 끝내는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노래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길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찾으며 의인의 세대에 속한 자입니까? 우리의 삶의 좌표가 자본과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향하고 있습니까?
시편 14편은 단순한 고대의 노래가 아니라, 오늘의 세상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의 끝은 부패와 파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구원과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다윗의 탄식을 뒤집어, 믿음의 고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가 선을 행하는 자로 부름받았다”라고 말입니다. “끝내 함께 무너진다”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 창조를 기대한다”라고 말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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