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 1:20~23)
1944년, 태평양 전쟁이 절정에 달하던 무렵의 일입니다. 일본군이 점령한 어느 섬에서 한 병사가 밀림 속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는 명령을 받들어 싸웠고, 전쟁이 끝난 줄을 몰랐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그 순간에 승패는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밀림에서 혼자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승리가 선언되었는데 아직 싸우는 병사가 아니라, 이미 승리가 완성되었는데 그 승리를 땅 위에 집행하지 않는 교회의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결판은 났습니다. 그러나 그 결판을 이 땅에 실현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 일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장엄한 선포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시고,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순히 그분이 이 땅을 떠나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의 권위를 획득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몸은 여전히 땅에 있습니다. 머리와 몸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이 교회의 승천이고, 그리스도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입니다. 교회는 하늘의 머리에게 속한 지상의 몸으로서, 머리가 획득한 것을 땅 위에서 대행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근본에서 달라집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의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종교 문화를 보존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승천하신 머리의 뜻을 이 땅에서 실행하는 하나님의 대리 기관입니다.
한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빚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법원에서 채무 탕감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문은 이미 작성되었고, 법관의 도장도 찍혔습니다. 그러나 그 판결이 실제로 집행되기 전까지, 채권자들은 여전히 그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습니다. 판결이 있다는 것과 판결이 집행된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 사이의 시간, 그 사이의 공간에 그녀가 서 있었습니다.
교회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사탄을 멸하셨습니다. 그 판결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그러나 왕국이 완성되기까지, 그 판결을 이 땅에서 집행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와 왕국 사이에 서 있습니다. 완성된 승리와 완전히 임할 나라 사이, 그 좁고도 중요한 자리에 교회가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의 임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승리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며 증언하는 것입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 영국 교회들은 전쟁의 위기 앞에서 특별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진행되던 그 며칠 동안, 영국 전역의 교회들에서 쉬지 않고 기도가 올라갔습니다. 처칠은 훗날 그 며칠을 가리켜 "기적의 날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폭풍이 갑자기 잠잠해지고, 독일 기갑 부대의 진격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멈추었습니다. 33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 살아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기도 덕분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가 역사 속에 개입했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교회의 기도는 사탄의 활동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힘입니다. 우리가 신문을 읽을 때, 세계의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어디서 어둠의 권세가 움직이는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합당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소원의 표현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그분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사탄의 나라가 물러나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위한 사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손에 사로잡힌 포로를 하나님 편으로 되찾아 오는 영적 탈환 작전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왕국에서 한 사람이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더 얻으면, 사탄은 한 사람이 줄어듭니다. 복음 전파는 이 땅의 세력 균형을 하나님 편으로 기울이는 일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전략적 목적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자리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사탄의 권세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바울의 이름을 빌려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귀신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귀신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한 사람, 사탄과 어떠한 타협도 없는 사람을 귀신은 알고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귀신이 알아보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한 발은 하나님께, 한 발은 세상에 걸쳐 놓은 사람인가?" 마귀와 은밀히 교제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지옥의 문을 흔들 수 없습니다. 교회의 권세는 교회의 거룩함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일제 치하에서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 고문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이름 없는 신앙인들,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그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절대적인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전진합니다.
하늘에 없는 것은 땅에서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불법도 없고, 질병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억압도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실현된 곳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그 하늘의 실상을 기준으로 삼아, 이 땅에서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거부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단순한 낙관주의나 사회 운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 아래 우리에게 오는 것과 사탄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보내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은 잠시 후에 지나가지만, 사탄에게서 온 것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묶으려 합니다. 이 분별이 교회에게 필요합니다. 그 분별 위에서 교회는 기도하고, 선포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무엇이든 거절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교회의 책임입니다.
만약 이 땅에 교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교회는 소금처럼, 빛처럼, 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둠을 밀어내는 존재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마다 사탄의 권세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 영역을 넓혀 갑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교회는 피난처가 아니라 전선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피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맞서는 곳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되, 세상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분리되되,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자리입니다.
교회가 사교적 모임으로 축소되거나, 종교적 의례의 집행처로 전락하거나, 세상과 구분 없이 뒤섞일 때, 교회는 자신의 자리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승천하신 머리의 권위를 이 땅에서 대행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승리는 완성되었습니다. 왕국은 반드시 옵니다. 그 사이에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고되지만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기도하고, 전파하고, 분별하고, 저항하고, 순종하면서, 교회는 오늘도 하늘의 뜻을 땅으로 가져옵니다. 교회가 그 자리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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