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것들을 함께 받으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브리서 2:14)
어느 왕국에 오랫동안 나라를 어지럽히던 반역자가 있었습니다. 왕은 마침내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충성스러운 장수를 보내 그와 싸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수마저 반역자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왕은 반역자 하나만이 아니라 반역자의 편이 된 장수까지,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왕은 직접 전쟁터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장수의 옷을 입고, 장수의 자리에 서서, 장수가 해야 했던 일을 친히 완수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신 일의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만물 위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반역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땅 위에 세우는 도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뱀의 유혹에 넘어갔고, 장수가 반역자의 편으로 돌아선 것처럼, 아담은 하나님의 원수 편에 섰습니다.
이제 문제는 둘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죄와 죄인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사탄의 권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처리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자리에 서셔서, 사람이 했어야 할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던 날 새벽, 연합군 병사들은 해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상륙을 단순한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영적 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피와 살을 가진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히브리서 2장 14절의 말씀대로, 죽음을 통해 사탄을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탄을 처리하려면 반드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탄을 쫓아내신다면, 그것은 반역자를 왕이 직접 처형하는 것과 같아서, 사람에게 회복된 권세와 통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탄을 처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탄생은 승리의 준비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세 가지 유혹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하나님을 의심하는 불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려는 욕망. 그리고 그는 세 번 모두 실패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같은 종류의 세 가지 유혹 앞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공격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라." 표면적으로는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말 같지만, 그 이면에는 섬뜩한 함정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사람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으로서 기적을 행하신다면, 사람을 대표하는 자격을 잃으시게 됩니다. 사람의 대표자가 아닌 분이 사탄을 이긴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회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함정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마치 이렇게 선언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입장에 서 있다. 나는 사람으로서 이 싸움을 싸울 것이다.'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려다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아담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자리를 지키심으로 이기셨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신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시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아셨고,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 유혹은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예배였습니다. 만약 모든 인류의 대표자이신 예수님이 사탄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 온 인류가 패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셨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의 의지는 사탄의 편에 섰고 완전한 패배를 가져왔습니다. 광야에서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편에 섰고 완전한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희생자의 처형대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전혀 다른 장면입니다. 그것은 심판대였습니다. 세 가지가 동시에 심판받은 자리였습니다. 첫째, 죄인인 우리가 심판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포함하시는 분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 아담 안에 있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습니다.
둘째, 세상이 심판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머리는 사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 안에 세상도 함께 달린 것입니다.
셋째, 사탄이 심판받았습니다. 민수기의 놋뱀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뱀을 달았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놋뱀은 뱀의 모양을 했지만 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자리에 서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뱀의 후손인 우리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그 심판 속에서 사탄 자체도 처리되었습니다.
체스판에서 왕이 잡히면 게임이 끝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사탄의 왕을 잡으신 순간이었습니다.
1945년 4월, 베를린이 함락되었을 때, 전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항복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도 이미 결정은 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그러한 순간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사탄은 패배했지만, 부활은 그 승리를 온 우주 앞에 공개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셔서 그 안에서 죽음 자체를 깨뜨리셨습니다. 죽음이 그분을 삼키려 했지만, 오히려 삼켜졌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드러내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벗어버렸다'는 표현은 적군이 손에 아무것도 쥘 수 없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탄의 먹이는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흙의 차원이 아닙니다. 부활 생명은 사탄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세례가 그것을 상징합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아담 안에 있는 옛 사람이 묻히는 것이요,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부활 생명으로 사는 새 사람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부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탄의 음식이 아닙니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지구 중력의 영역 밖에 섰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에베소서 1장 20~22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정사, 권세, 능력, 주권 위에, 이 시대뿐 아니라 오는 시대의 모든 이름 위에 높이 세우셨습니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공중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사탄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에베소서 2장 6절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고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건드릴 수 없는 그 자리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함께 있습니다.
승리와 승리를 자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승리는 전쟁터에서 이기는 것이고, 승리를 자랑하는 것은 그 승리를 축하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스포츠 팀이 우승했을 때, 응원하던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기뻐하고 환호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경기를 이긴 것은 아니지만, 그 승리는 그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승리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시편 23편 5절은 이것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이 차려집니다. 이것은 굴욕 속의 만찬이 아니라, 승리를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잔치입니다. 우리는 원수가 보는 앞에서 우리 왕의 승리를 누립니다.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인 베들레헴의 탄생부터 광야의 시험, 갈보리의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천에 이르기까지는 하나의 일관된 원칙 위에 서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으로서, 사람의 자리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싸우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 되려 했고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아담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셨고 이기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의지는 사탄의 편에 섰습니다. 골고다와 부활의 동산에서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그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분이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깁니다. 그분이 사탄 위에 앉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 안에서 그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좌절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고, 사탄을 처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의 머리 되신 분께 영광을 돌리는 그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되었고, 지금도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승리의 수혜자요, 그 승리를 자랑하도록 부름받은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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