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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30.

"만물이 그를 위하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브리서 2:10)

어느 날 밤, 한 목동이 광야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검은 하늘 위에 수놓아져 있었고, 달은 고요히 그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경이감에 사로잡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광대한 하늘을 만드신 분이, 왜 나 같은 연약한 인간을 기억하시는 걸까?" 이 질문은 수천 년 전 시편 기자 다윗이 시편 8편에서 던진 바로 그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밝혀주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입니다.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동산 가운데 두 그루의 나무를 두셨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이 두 나무는 사실 두 가지 원리, 두 가지 세계관, 두 가지 존재 방식을 상징합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뜻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없으므로,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줄기에서 분리되는 순간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붙어 있는 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충동이 바로 한때 루시퍼가 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이사야 14장에서 그는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그로 인해 하늘에서 추락했습니다. 선악과는 그 사탄의 정신이 열매의 형태로 동산 안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집니다. 사탄의 뜻은 공중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은 지상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생명나무를 먹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고, 선악과를 먹는 것은 사탄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에덴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순종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적인 전쟁에서 인간이 어느 진영에 서느냐의 이야기였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과 2장 15절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데에 네 가지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사망을 처리하기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탄은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히 2:14).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번식을 통해 생명이 죽음을 압도하게 하셨습니다.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그 죽음에서 수십 배의 열매가 맺히듯이, 하나님은 생명의 번성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불순종을 처리하기 위해, 땅을 정복하라고 하십니다. "
정복하라"는 말은 저항하는 것을 제압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은 이미 이 세상의 임시 통치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세상은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 반역의 세력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셋째, 공격을 처리하기 위해, 동산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을 "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지키다'는 말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동산 밖에는 이미 사탄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고, 인간은 그 공격을 막아내는 파수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넷째, 패괴(부패)를 처리하기 위해,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으로 인해 온 세상이 부패와 썩음으로 신음하게 되었고(롬 8:22), 하나님은 인간이 회복된 왕권으로 그 부패를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 목적을 하나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의 대리통치자로 세우셔서, 사탄이 만들어 놓은 모든 문제인 사망, 반역, 공격, 부패를 처리하게 하셨습니다. 한때 사탄에게 속했던 이 지상의 권세를, 하나님은 인간에게 돌려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목동 다윗의 노래인 시편 8편 2절에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선언입니다. 우주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했을 때, 인간이 이 땅에 등장한 시간은 자정이 되기 불과 몇 초 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갓 태어난 아기와도 같습니다. 연약하고, 경험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아기와 젖먹이를 통해 당신의 원수 사탄을 처리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이자 하나님의 유머이기도 합니다. 강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를 통해 가장 강력한 원수를 이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마태복음 21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시며
"어린 아이들의 찬송이 온전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거창한 군사력이 아니라, 그분께 순전하게 의지하는 연약한 자들의 찬송을 통해 선포됩니다.

시편 8편 5절은 아름다운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을까요?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략적인 낮아짐입니다.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죽음을 경험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만 사탄의 권세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인간보다 무한히 높으신 분이셨지만, 인간이 되심으로 천사보다 잠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낮아지심을 통해 죽음을 맛보시고, 죽음을 이기심으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은 선악과 앞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면류관은 통치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씌우시는 것은, 인간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리시어 당신과 함께 통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8절은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셨으니, 만물로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혼돈 가운데 있습니다. 전쟁이 있고, 질병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의인이 고통당하고 악인이 번창하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온전히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미완성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4~28절은 그 완성의 순서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폐하여질 것입니다. 마지막 원수인 사망이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질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실 것입니다.

처음에 등장한 그 목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압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을 지상의 관리인으로 두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간을 당신의 우주적 목적의 동반자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당신의 영광을 함께 나눌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가게 열쇠를 맡기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은 아직 어리고 미숙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이가 언젠가 가게를 함께 운영할 동역자가 되기를 바라며 일찍부터 책임을 맡깁니다. 열쇠를 쥔 아이는 그 순간부터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을 위임받은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스리라고 명하셨을 때, 그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우주적 경영에 초대받은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연약하기에 더욱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의존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이것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것은 근원을 말하지만, 만물이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은 완성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당신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먹고 자고 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은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하나님 편에 선 배우입니다. 생명나무를 선택한 자, 곧 날마다 하나님께 의지하기를 선택한 자로서, 당신은 이미 그 드라마의 승리하는 편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