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어떤 사람이 동시에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두 이름이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서로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일관되게 두 가지 칭호를 함께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은 그 두 칭호를 하나의 문장에 담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두 칭호가 같은 의미라면 왜 굳이 둘 다 말했을까요? 성경이 이 두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영원한 계획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그분의 존재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직함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 순간, 이 땅에 오실 분이 누구인지를 천사는 먼저 알립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칭호는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는 신성입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본질의 공유가 있듯이, 아들이신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신적 본질을 나누십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동등한 영광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계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분노했습니다. 그것이 곧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는 것임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입니다(요 5:18).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시간 안에서 시작된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들이셨고, 영원 후에도 아들이십니다. 마치 태양이 태양으로 존재하기 위해 어떤 결정이 필요하지 않듯이, 주님이 아들이심은 그분의 본래적이고 영원한 존재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 칭호는 그분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기름 부음을 받아 그 직분에 세워졌습니다. 기름 부음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임무를 위탁받는 행위였습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에서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외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 끝에 선포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아들은 영원 전부터 아들이셨지만, 그리스도가 되심은 특정한 시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취하셨을 때, 그분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가 아니셨습니다. 성육신, 세례, 십자가, 부활을 통해 그분은 완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아들 되심은 그분의 본질이고, 그리스도 되심은 그분의 사명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어떤 나라의 왕자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왕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누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왕자가 특별한 사명을 받아 대사로 파견될 때, 그는 왕자인 동시에 대사가 됩니다. 왕자 됨은 그의 정체성이고, 대사 됨은 그의 임무입니다. 주님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말하고, 그리스도는 그분이 무엇을 위해 오셨는가를 말합니다.
이 두 칭호의 구별이 왜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우리가 공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은혜로 입양된 자녀이지 본성적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분의 아들 되심은 그분만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개인 이름이 아니라 직분의 이름이며, 그 직분은 몸 전체를 포함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아도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교회도 그러하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를 함께 가리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위대한 교향곡 지휘자의 이름이 전설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오케스트라 전체를 그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지휘자가 없으면 오케스트라도 없고,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음악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음악적 실재를 이룹니다. 그리스도도 이와 같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 둘이 합하여 하나의 단체적 그리스도를 이룹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도 하나님의 그 영원한 계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두 단계로 펼쳐집니다. 먼저 교회 안에서, 그 다음 온 우주 안에서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은 우리가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아래 자라갈 때, 교회는 그분의 권위 아래 세워집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10절은 더 넓은 지평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적 사역을 직접 혼자 수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먼저 교회 안에서 그것을 이루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아래 복종하는 법을 배울 때, 그 패턴은 온 우주를 향해 확장됩니다. 교회는 단순히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이 먼저 시험되고 실현되는 현장입니다.
결국 두 칭호는 하나의 경이로운 실재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분이 누구이신지 압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그리고 당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요한복음 20장 31절은 그 두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성경 전체를 마무리짓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수긍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분이 누구이신지(하나님의 아들)를 인정하고,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도 그 이름을 함께 지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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