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70:1~5)
한국 사회에는 ‘화병’이라는 독특한 병이 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협회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이 병은, 말 그대로 마음속에서 계속 불이 타는 병입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인 체면, 관계, 침묵, 인내, 억눌림이 짙게 쌓여 만들어지는 질병이라고도 합니다. 말 못한 서러움이 가슴에 쌓이고, 애매한 억울함이 속을 태우고, 분노가 풀리지 못한 채 몸속을 맴돌다 결국 어느 날 폭발하는 병입니다. 어떤 날은 ‘울컥’, 또 어떤 날은 ‘버럭’ 하며 일상으로 튀어나오다가, 때로는 더 깊이 마음속을 잠식해 우울, 자책, 체념으로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다윗 역시 우리가 겪는 이 ‘내면의 화’에서 멀리 떨어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오해를 받았고, 억울한 쫓김을 당했고, 이유 없이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감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처, 분노, 억울함, 공포… 그의 심장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충분히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컸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모든 감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법’을 알았습니다.
시편의 첫 구절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도우소서.” 이 짧은 외침 속에는 다윗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하나님, 저 이대로는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 빨리 도와주세요.’
우리는 흔히 신앙이란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 침착하게 기도하는 것, 평안하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져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숨기지 않았고, 인내하려고 혼자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속히” 하나님 앞에 뛰어들어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조롱하고 공격한 원수들을 향해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물러가게 하소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마음속 화를 ‘사람에게’ 쏟아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폭발하지도 않았습니다. 억눌러 병이 되도록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보복의 권한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만 가능한 감정의 건강한 배출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직접 해결하려 하면 죄가 되고, 우리가 분노를 억누르면 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토해낼 때 그것은 기도가 됩니다.
다윗은 기도의 방향을 갑자기 바꿉니다. “주를 찾는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다윗은 억울한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마음을 돌립니다.
놀라운 전환입니다. 분노의 기도가 예배의 선언으로 바뀝니다. 사람 때문에 흔들린 마음이 하나님 때문에 안정됩니다.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놓으면, 하나님이 감정을 새롭게 만져 주십니다. 분노의 자리에 기쁨이 자리 잡게 됩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다윗은 깊은 고백을 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이 고백은 감정의 바닥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저는 지금 약합니다.’ ‘저는 혼자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가장 정직한 믿음은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두려움이고,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다윗은 이어서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지체하지 마소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습니다. 그것이 곧 그의 회복이 됩니다.
화병은 감정이 흘러갈 길을 잃었을 때 찾아옵니다. 감정은 반드시 흘러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흘려보낼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하나님의 품입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속이 타면 타는 대로, 두려우면 두렵다고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감정의 가장 건강한 배출구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노까지도 품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기쁨과 감사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화병을 예방하는 신앙인의 길입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사람에게 터뜨리지도 말고, 하나님께 쏟아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며, 무너져 가는 내면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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