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7~13)
지진이 잦고 가진 것도 없던 도시, 빌라델비아. 그곳에는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거의 없는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가난했고, 사람도 적었고, 유대인들에게 외면당하며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작은 교회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작은 교회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너희 앞에 문을 열어 두었다.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계 3:8) 세상은 힘이 많은 사람 앞에 문이 열립니다. 돈과 명예, 위치와 인맥이 문을 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법칙을 말합니다. 문은 우리가 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여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한번 여시면, 어떤 세력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가장 먼저 하신 말은 이것입니다.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계 3:8) 주님은 그들의 약함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연약함 가운데 버티고 지킨 것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힘이 적어도 믿음을 놓지 않은 사람, 넘어질 듯 흔들려도 말씀을 붙든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보다 우리의 방향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큰 일이냐 작은 일이냐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있느냐를 보십니다.
마귀를 이기게 하는 힘은 ‘더 강해진 나’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많이 공부해서 마귀를 이기자.” “믿음을 더 갈고 닦아 마귀를 이기자.” 노력은 귀합니다. 말씀을 공부하는 것, 믿음을 다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 자체가 마귀를 이기는 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귀는 성경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았던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식이나 결단으로 겨룰 상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마귀를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이 말하는 전신갑주(의, 진리, 복음, 구원, 성령의 검)는 각각의 품목이 아니라 결국 한 인격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자신을 보호하는 외투가 없습니다. 대신 주님이 주신 ‘예수라는 옷’을 덧입은 사람입니다. 그 옷이 우리를 지킵니다. 그 옷 때문에 마귀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 옷이 바로 우리의 의요, 진리요, 평안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힘의 크기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위에 입혀진 옷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참된 권세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질문을 자주 합니다. “내 인생의 문은 누가 여는가?” “기회의 문은 무엇으로 열리는가?” “내 힘이 부족해서 막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계시록은 선명하게 말합니다. 문은 오직 주님이 여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연약함은 그 문을 막지 못합니다. 삶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기도해도 변화가 없어 보일 때, 작은 나를 보며 주저앉고 싶을 때… 그때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여십니다. 성도의 승리는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말씀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작은 믿음에 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많아 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던 곳입니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늘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기둥”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계 3:12) 지진 같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이 주어집니다. 환경은 흔들려도, 마음은 무너지는 날이 많아도, 주님은 성도를 그분의 성전 안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기둥으로 세우십니다. 세상은 오늘 나를 쓰고, 내일 나를 버릴지 모르지만, 주님은 한 번 세우면 다시는 옮기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작았고, 약했고, 소외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겠다.”(계 3:9)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주님의 인정이 진짜 영광입니다. 주님이 당신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의 이름은 내가 기억했다. 너의 작은 충성도 내가 보았다. 너는 비록 작으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기도도 부족하고, 말씀도 많이 모르는 것 같고,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능력이 아니라, 말씀을 붙드는 방향, 힘은 적어도 그리스도의 옷을 벗지 않으려는 마음,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의지입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을 귀하게 보시는 주님이 우리 앞에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굳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힘은 적으나 제가 가진 이 작은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겠습니다.” 그 고백을 듣고,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누가 감히 내가 연 문을 닫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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