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240 혼인잔치의 비유에 담긴 진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합당하지 아니하더라.”(마태복음 22:8)예수님의 혼인잔치 비유는 단순한 초대장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피 묻은 초청장입니다. 그것은 살과 피로 잉크를 삼아, 포도즙 틀에서 짓밟힌 구속주의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은 하늘의 전쟁서신입니다. 그 전쟁은 세상을 향한 것도, 단지 사탄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자아를 향한 것, 곧 '나'라는 옛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침공인 것입니다.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는 단순한 메시아 도래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귀는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였습니다. 스가랴서 9장의 예언에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단어를 덧붙이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민족 해방의 전사였고, 정치적 권세.. 2025. 6. 28. 지식은 흐르는 물과 같다 탈무드의 랍비 하니와 이디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지식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지식의 본질, 더 나아가 진리의 생명력을 꿰뚫는 통찰입니다. 성경에서 “목마른 자는 모두 물가로 나오라”(이사야 55:1)고 한 말씀은 단지 갈증을 해소하라는 초대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의 말씀, 곧 영혼의 해갈을 주는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을 향한 부르심입니다.이 세상 모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땅의 굴곡과 방향에 따라 물은 언제나 겸손히 아래로 흘러들며, 고이거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 자연의 이치 속에서 랍비들은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지식 역시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 이미 채워.. 2025. 6. 28. 말씀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 어느 날,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내게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습니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덮개가 진리의 생기를 감싸고 있었고, 나의 경건의 시간은 반복되는 의무감으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습관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냐?”그날 이후, 나는 경건의 시간의 본질을 다시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은 단순한 종교적 루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멈추고, 묵상하고, 머무는 시간을 회복하려 애썼습니다.경건의 시간은 말씀을 통해 시작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2025. 6. 28. 종의 형체를 입으신 주님처럼 “오직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7)머슴 목회자 이자익(1879∼1959) 총회장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큰 바위 얼굴’로 통합니다. 20여개 교회를 설립하고 세 차례나 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냈으면서도 명예나 권력, 재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은 농촌교회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일제강점기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했습니다.1942년 장로교 총회를 재건한 그의 행정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 입각을 제안했지만 역시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목사로 종신하겠다”는 게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70세 고령에도 장로회 대전신학교를 설립한 열정의 목회자였습니다. 교계 ‘법통’으로도 불렸습니다.. 2025. 6. 28. 이전 1 ··· 5 6 7 8 9 10 11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