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고 부탁하였으니…"(갈라디아서 2:10)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천산의 모든 짐승이 다 그분의 것”(시 50:10)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두 부유하게 살도록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집 앞에 금주머니를 놓으실 수도 있고, 한 번의 기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 먹이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많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가난하고 낮은 자로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만일 그분의 뜻이 ‘모든 성도를 부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렇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풍요보다, 더 깊은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통해 사랑의 통로를 여십니다. 그분은 부요한 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통해 나누는 기쁨을 배우게 하시고, 가난한 자들은 그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만약 세상에 가난한 형제가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말로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곁에 ‘가난한 자들’을 두심으로써, 우리의 사랑이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는 사랑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그분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 때, 그것을 자신에게 한 일로 받으십니다. 우리가 굶주린 이를 먹이고, 병든 이를 위로하고, 외로운 이를 찾아갈 때, 그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드리는 사랑의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 찬양과 기도도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분은 실제로 사랑이 손과 발을 통해 흐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은 무거운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은혜 받은 자로서’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단지 받기만 하는 이가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나눔’과 ‘의존’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며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난한 형제를 향해 손을 내밀 때, 그 손끝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혹시 우리의 주변에 가난한 이웃, 외로운 성도, 연약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주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거룩한 기회로 보십시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그저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그들에게 행한 모든 사랑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 가난한 자들을 통해 저의 사랑이 시험받고, 또 그들을 섬김으로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제가 가진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작은 자들을 품게 하소서. 오늘도 제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주님의 얼굴’로 보게 하시고, 그들을 섬김으로 당신께 예배드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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