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라디아서 1:11~1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받고 싶은 인물을 찾게 됩니다. 성경 속에서는 특히 모세나 다윗,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 또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의 롤모델이 되곤 합니다. 그들의 믿음, 헌신, 업적은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키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러한 마음 속에 숨은 위험한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보다 업적이며, 순종보다 성취이며, 십자가보다 능력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본받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의 삶 속에 가득했던 고난과 가시, 고통의 여정은 그대로 본받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성경 속 ‘성공한 신앙인’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은 선악과 이후 인간 속에 자리 잡은 영광을 훔치고 싶어 하는 탐욕, 즉 "나도 그들처럼 높아지고 싶다"는 욕망에 가깝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읽는 지금의 기독교 문화는, 실은 인간을 중심에 두는 또 다른 방식의 우상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높이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나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참된 복음에는 인간의 업적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복음의 출처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영광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바울을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 14:15)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출처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죽어 있던 영혼이 살아나며,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은 단 한 사람의 공로도 아닌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더 복음을 잘 전하는가?”, “누구의 설교가 더 능력이 있는가?” “누구에게 배워야 신앙이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 자체가 이미 복음의 출처를 인간에게 두는 치명적 오해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열심, 설득력, 능력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계시로부터 시작됩니다.
계시가 없다면, 예수님을 직접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바울처럼 “예수로부터 직접 배웠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특별한 존재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놀라운 사실을 증언합니다.
예수님께 직접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본 사람들, 무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걸었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쳤으며, 예수님을 직접 본 대제사장과 무리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왜입니까? 복음은 인간의 배움·경험·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속에 비추어 주시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의 아들을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갈 1:16)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예수님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울 안에 자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로마서 10장의 말씀을 전도의 ‘근거’로 사용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15) 그래서 “전도는 우리 책임”이라고 강조하고,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핵심은 “전도하는 사람의 역할이 크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셔야만 전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전도자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다는 사실이 위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떤 인간도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나처럼 업적을 이루라”, “나처럼 열심을 내라”, “나처럼 능력 있는 사도가 되라”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버렸습니다. 자신의 의를 믿지 않았고, 육체의 열심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리스도를 얻고자 자신을 비웠습니다.
바울을 본받는다는 것은 업적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는 것’을 본받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포기하고, 복음의 출처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는 진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은 결국 한 고백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리면 우리는 결국 이 고백으로 돌아갑니다. “복음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 신앙의 시작도 내가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바울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택정되었듯,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 회개하게 된 것,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 것,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열심도, 지혜도, 능력도 복음의 시작점이 아닙니다.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가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도, 복음을 깨닫는 일도, 누군가가 예수를 믿게 되는 그 놀라운 기적도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 은혜에 참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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