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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산상수훈 -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0.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도 짧고 단순하지만, 사실 성경 전체의 구조를 꿰뚫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흔히 ‘
마음을 깨끗하게 가꿔야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산상수훈은 ‘어떻게 해야 복을 얻는가’의 지침서가 아니라, 이미 복을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현실과 증상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요 8:31~32)고 하셨습니다. 참 제자에게는 반드시 드러나는 증후가 있습니다. 그 증후 중 하나가 바로 ‘마음의 청결’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는 선언은, “이미 복을 받은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라는 하나님의 시각에서의 진술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우리가 어김없이 찔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
나는 정말 마음이 청결한가?”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은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는데, 내 눈엔 하나님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
마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마음’을 뜻하는 단어는 종종 ‘심장’과 함께 쓰입니다. 그 말은 곧 마음이 생명 전체와 직결된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잠언 4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정서·의지, 즉 전 인격 전체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렘 11:20, 계 2:23)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으면 생명이고, 하나님을 떠나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 죽음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단순히 “
착하고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중심이 제자리를 찾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가장 더럽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곳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은 본래 죽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도바울조차도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절규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노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심지어 바울조차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도원에 들어가 금욕을 해도, 계속 명상을 하며 마음을 비워도, 스스로 마음을 청결하게 만드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산상수훈 전체가 말하듯, “
청결한 마음”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의 현상입니다.

청결’이란 제자리로 돌아간 마음입니다. 우리는 청결을 흔히 ‘때가 없는 상태’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적 개념은 훨씬 더 깊습니다. 예를 들어, 하얀 화장실 바닥에 검은 오물이 떨어져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오물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불결’한 것입니다. 그 오물을 없애거나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청결해집니다.

그 반대로 음식, 예를 들면 비빔밥이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불결입니다. 왜냐하면 비빔밥은 비빔밥의 자리(그릇)에 있어야 하고, 화장실 바닥에는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청결이란 “
제자리로 돌아감”이고, 불결이란 “엉뚱한 자리에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적 마음의 청결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이 엉뚱한 곳(세상, 욕심, 우상)에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본래 있어야 할 자리인 하나님께만 향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청결은 단순히 깨끗함이 아니라, 단 하나로 통일된 마음, 곧 “
하나님만을 향하는 순전함”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청결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노력해서 마음을 청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이 복을 부으심으로 일어나는 ‘
재배치’입니다. 죽어 있던 마음을 다시 살려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사건이 곧 거듭남이며, 새 마음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창세전 언약 안에 있는 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하신 자들에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이루고 계신 것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무엇을 보게 된다는 뜻일까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장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내 삶의 모든 장면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발자취가 보이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즉,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님께 향할 때, 우리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삶과 말씀과 은혜 가운데 점점 더 선명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미 하나님께 붙들린 자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도덕적 순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제자리인 하나님께로 돌아온 상태,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상태, 마음이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을 얻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복을 주신 자들에게 시간 속에서 나타나게 하시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말씀 앞에서 스스로의 더러움을 보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
주님, 저는 제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제 마음을 붙들고 하나님을 향하도록 돌려놓으셨기에, 제 마음은 이미 복된 마음입니다. 제게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그때 우리는 점점 더 분명하게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십자가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그늘 속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