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복이 있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여.”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긍휼을 인간이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덕목이나 행위의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선언은 조건문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미 복을 받은 자만이 긍휼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종종 이렇게 오해되어 왔습니다. “긍휼을 베풀어라. 그래야 너도 긍휼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복음은 즉시 알미니안적 사고로 기울어집니다. 마치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긍휼을 불러오는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5~16)
만약 마태복음 5장 7절이 “긍휼을 행해야 긍휼을 받는다”는 뜻이라면, 바울은 예수님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 됩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전히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긍휼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긍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함, 헷세드는 단순한 ‘불쌍히 여김’이 아니라, 타자의 실존적 비참함을 보고 함께 슬퍼하며,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시편 62편 12절은 말합니다.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직역하면, “주님, 주님은 긍휼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긍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말했습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성품이다.” 그러므로 긍휼은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고, 그분의 백성에게 전가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도가 긍휼을 행한다는 것은 자기 속에서 긍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의 긍휼이 흘러나온다는 뜻입니다.
왜 성도의 긍휼은 ‘세상 윤리’와 구별되는가? 세상에도 선행은 많습니다. 남을 위해 재산을 팔고, 헌신하고, 구제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막론하고 존재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바리새인들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엄청난 구제를 실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장)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의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세상적 긍휼은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긍휼은 인간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세상적 긍휼은 ‘착하다’는 평가를 얻지만 성도의 긍휼은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고백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구제는 아무 것도 아님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는 자다. 그 사람은 이미 복 받은 자다.” 긍휼을 행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은 자에게서 긍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복을 받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 자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긍휼은 ‘도덕적 선행’이 아니라 성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속성이 성도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종교인, 무신론자, 윤리주의자에게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성도 안에서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은혜의 흔적입니다. 긍휼은 ‘성공적인 성화’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7절을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자여, 네 삶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드러나는구나. 너는 참으로 복 있는 자다.” 긍휼은 ‘행해야 받을 것’이 아니라 ‘받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선함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반사하는 거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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