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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산상수훈 - 진짜 배부름이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예수님은 팔복의 네 번째 선언에서 이런 역설을 던지십니다. “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주리고 목마른데 어떻게 배부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모순 같은 자리에서 하늘의 복이 시작된다고 선언하십니다.

팔복은 로마의 압제 속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굶주림이 없어지고, 가난이 사라지고,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는 지상 왕국을 기대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아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주리고 목마른 그 자리 자체가 복이다.

기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선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신 목적은 이 땅에서의 결핍을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만을 의지하는 자리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의역하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복 있는 자여, 그대들은 지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그러나 사실은 너희가 이미 배부른 자다.

성도가 주린다는 것은 자기 안에 내세울 의가 없다는 자각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만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깨달음, 그것이 심령이 가난함입니다. 그 가난함에서 나오는 것이 애통이며, 그 애통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허함, 곧 온유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는 다시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주림으로 돌아옵니다. 팔복은 결국 한 줄기의 강처럼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
헛배부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그런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엇을 합니까? 자기 안에서 ‘뭔가 의로워 보이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그걸 붙들고 배를 두드립니다.

그것은 진짜 배부름이 아니라 헛배부름입니다. 공갈빵 같은 배부름입니다. 진짜 주린 자는, 자기 안에 먹을 것이 “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한 자입니다. 40일 금식 후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성경은 “주리셨다”고 표현합니다. 주님은 바로 그 자리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창조와 역사는 딱 한 가지를 증명합니다. “
왜 예수가 주인이어야 하는가.” 히브리서 1장은 하늘과 땅이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멸망할 세상과 영존하시는 주님이 대조됩니다. 즉, 이 천지는 영존하시는 예수를 드러내기 위한 가건물, 철거될 소품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 짧고 약한 인생을 통해 “
왜 예수만이 우리의 생명인가” 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결핍의 자리, 의가 다 무너지는 자리, 주리고 목마른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찾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이 채우시는 배부름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서 생산한 의로는 결코 배부를 수 없습니다. 하늘의 은혜로만 채워지는 배부름, 그것이 참된 만족입니다. 전체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참된 배부름은 ‘내 안에 아무 의도 없음’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배부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