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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라디아서 3:2~3)

당신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기로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우리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약 내가 예수를 믿기로 선택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내 행동으로 그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잘 믿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사는지,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지,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헌금하는지를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어리석도다"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켜서냐,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냐?" 언뜻 보면 쉬운 질문 같습니다. 누구나 "복음을 듣고 믿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는 '듣고 믿는 것' 자체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상기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인간의 본성은 똑같았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진리를 봐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을까요? 오직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듣고 믿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지키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바울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믿음은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지 않으며, 행위로 믿음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질문이 핵심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잘해야 해. 착하게 살고, 열심히 봉사하고, 율법을 지켜야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이지.'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원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도, 의로움도, 회개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모두 성령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왜 끝은 내 힘으로 마치려고 합니까?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나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체로 마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는 성령으로 마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끝까지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께서 하신다'는 고백이 믿음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십자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 믿고 있나', '내 믿음은 괜찮은가', '나는 구원받을 만한 사람인가' 같은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자기 믿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율법의 행위에 매달립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고, 봉사를 많이 하면 자기 믿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쓴다."(롬10:3)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의를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을 의로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의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행위 자체가 우리의 죄를 드러낼 뿐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행위로 증명하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보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피 흘림이 삭제된 가짜 십자가일 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우리를 잘 써먹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해. 성령님은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십자가는 구원받기 위한 통로 정도로 전락합니다. 구원받은 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게 하신 것도 십자가를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위해 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없이는 믿음이 시작될 수도, 마쳐질 수도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불가능한 믿음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시작이시고 마침이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에는 우리가 채워야 할 부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예수님이 완성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믿음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 나의 착한 행실 = 구원'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육체로 마치는 것', '저주로 마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시작이 성령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침도 성령의 일하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마쳐지는 믿음에 율법의 행위는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폭로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능함과 불가능성을 품은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능력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임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의 불가능성'입니다. 믿음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는 신비의 사건으로, 기적으로 끝까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믿음을 만들어내거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일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전도를 받아 교회를 다니게 되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교회 생활을 하게 되는 것과,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나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은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놀라운 신비이고 기적입니다. 만약 믿음이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를 믿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결심만 하면 믿을 수 있지 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성령으로 시작된 믿음은 성령으로 마쳐질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신비를 신비로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행위로 믿음을 증명하려는 유혹이 올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곳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이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시작도 마침도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은혜를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