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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거룩한 전쟁 - 영혼의 도성, 그리고 잃어버린 영광에 대하여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7.

우리는 종종 세상을 “우주”라고 부릅니다. 광활하고 끝이 없어 보이며, 수많은 별과 사람들, 문화와 사상이 뒤섞인 공간입니다. 존 번연은 이 우주를 여행하다가 한 도성에 이른 이야기로 "거룩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도성의 이름은 영혼의 도성입니다. 이 도성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바로 인간 한 사람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가 탁월한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정교하고 존귀하게 창조되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충 만들어 세상에 던져 놓으신 분이 아닙니다. 마치 최고의 건축가가 자신의 역작을 위해 모든 지혜와 정성을 쏟아붓듯,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자신의 기쁨을 위해, 자신의 거처로 삼기 위해 지으셨습니다.

영혼의 도성은 다른 어떤 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강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의와 거룩, 지혜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숨 쉬고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며 교제하도록 창조된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생각해 보면, 값싼 임시 거처와 왕이 머무는 궁전은 목적부터 다릅니다. 궁전은 왕이 거할 곳이기에, 구조와 장식, 방어와 안정성 모든 것이 최고 수준으로 설계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자신이 거하실 궁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에는 영원, 의미, 진리, 절대자를 갈망하는 구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궁전의 주인이 바뀌어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영혼의 도성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습니다. 귀, 눈, 입, 코, 그리고 감각의 문입니다. 이 문들은 원래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할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찬양을 말하고, 하나님의 향기를 맡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설계된 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이미지와 영상이 눈의 문으로 들어옵니다. 자극적인 말과 소음, 거짓 정보들이 귀의 문을 점령합니다. 입은 감사와 찬양보다 불평과 비교, 자기 정당화로 바쁩니다. 감각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며 무뎌집니다.

이것이 바로 존 번연이 말한 영혼의 침략 경로입니다. 성벽은 여전히 튼튼하지만, 문은 안에서 열릴 때 무너집니다. 마귀는 결코 강제로 문을 부수지 않습니다. 늘
“괜찮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네가 주인이다”라는 속삭임으로 자발적인 개방을 유도합니다.

샤다이 왕은 영혼의 도성을 난공불락으로 설계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꼭 죄를 지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행복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완벽한 도로 위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차를 가진 사람이, 굳이 절벽 쪽으로 핸들을 꺾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한 비참함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이 점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삶이 무너질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그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신뢰한 선택이었습니다.

영혼의 도성은 샤다이 왕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미워해서 법을 주신 분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 선을 넘지 마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자유를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오해했고, 자유를 독립으로 착각했으며, 결국 궁전의 주인을 내쫓고 다른 것을 들여왔습니다. 그 결과 영혼은 더 이상 평화로운 도성이 아니라,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신학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내 영혼의 도성에는 누가 왕으로 앉아 있습니까? 내 다섯 개의 문은 누구에게 열려 있습니까? 나는 여전히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지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영혼의 도성은 원래 하나님이 거하시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왕이 다시 돌아오셔서 무너진 성을 회복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전쟁의 시작이며, 동시에 은혜의 이야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