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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에 속한 사람 - 혼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5.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

사람은 작지만 참으로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사람을 향해서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단순한 생물 이상의 존재입니다. 영과 혼과 몸을 가진,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창조된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이 존귀한 사람에게는 늘 한 가지 갈림길이 있습니다. 영으로 살 것인가, 혼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혼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보면”, “경험상으로는”이라는 말로 신앙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혼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혼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관입니다. 혼은 분석에는 능하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큰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기도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때 혼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게 맞나?” “이건 불공평하지 않은가?” 혼은 반드시 설명을 요구합니다. 납득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의 대상이십니다. 그래서 혼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늕것입니다. 오직 영만이 하나님을 압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영적인 일은 영으로 분별하느니라.” 혼은 하나님을 연구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사탄은 결코 사람의 몸을 통해서 경배를 얻지 않습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혼, 특히 ‘’라는 자아입니다. 사탄은 본래의 위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교만은 지금도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 안에서 재현됩니다. “내가 판단한다.” “내가 결정한다.” “내가 책임진다.” 이것이 바로 혼의 독립성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타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그 순간 사람은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에서,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혼의 확대이고, 이것이 사탄이 얻고자 했던 경배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혼을 극도로 확대시킵니다.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하고, 지식은 “네 판단을 신뢰하라”고 가르치며, 문화는 “네가 중심이다”라고 외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주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는 점점 더 완고해지고 있습니다.

영은 의존과 관련되고, 혼은 독립과 관련됩니다. 영으로 산다는 것은 무능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으로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모릅니다.” “주님, 저는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당신께 묻습니다.” 반대로 혼으로 사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내 판단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 차이는 아주 미묘해 보이지만, 경배의 방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영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경배를 받으시고, 혼을 따라 살면 사탄이 경배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바로 혼의 생명, 즉 ‘자기 자신을 붙드는 삶’을 의미합니다. 혼을 잃는다는 것은 자아를 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을 잃는다는 것은 판정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혼은 즉시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틀렸다.” “내가 옳다.”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영은 이렇게 우리를 이끕니다. “주님, 이 상황을 당신께 맡깁니다.” “내 판단을 내려놓습니다.” “십자가를 집니다.” 이것이 매일의 십자가입니다. 혼을 처리하는 방식은 단번의 결단이 아니라 매일의 포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십자가에서 대치의 방식으로 처리하셨지만, 혼은 그렇게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혼은 우리가 날마다 잃어야 할 영역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왜 그런가요? 그들은 혼을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쉽게 혼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반면 사탄은 “네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판단할 것인가, 맡길 것인가, 혼을 따를 것인가, 영을 따를 것인가, 혼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영만이 하나님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저를 혼의 능력에서 구원해 주옵소서.” “저를 스스로 의지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영으로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십자가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내 판단을 내려놓는 작은 죽음, 그것이 바로 혼을 잃고 영으로 사는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