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에 속한 사람들

사람으로 축소되어 오신 예수님 - 이해받기 위해 작아지신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30.

산은 조용했습니다. 눈 덮인 노산의 겨울은 사람의 흔적을 거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번 밥을 가져다주는 어린아이 외에는, 그 누구와도 말을 나눌 수 없는 고독한 시간. 조용함을 사랑하던 사람조차도 시간이 흐르자 견디기 힘든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다가, 그는 산새들이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갑작스레 문을 열고 다가가자, 새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음이 전해질 길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남은 밥을 뜰에 뿌렸습니다. 처음엔 멀리, 그 다음엔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문 뒤에 숨어, 새들이 경계 속에서도 먹이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새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함께 겨울을 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심을 품고 있어도, 그 진심은 새들의 언어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크고 낯선 존재는 언제나 위협일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내가 너무 크구나. 만일 내가 나를 줄이고 줄여, 산새처럼 작아지고, 산새의 모습이 된다면,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그때라면, 내 마음을 다 말할 수 있을 텐데.” 이 고백 속에, 복음의 가장 깊은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하나님이 여전히 크고 위대한 하나님으로만 계셨다면,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초월적인 분이라는 사실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는, 죄인인 우리는 그분께 다가갈 수 없습니다. 크심은 경외를 낳지만, 친밀함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도, 시야도, 이해력도, 죄의 문제도 모두 제한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왕래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려면, 하나님 쪽에서 내려오셔야만 했습니다. 그 내려오심이 바로 성육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로 오셨습니다. 설명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삶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이 신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모습을 가지시어,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셨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비움’은 신성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영광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해받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두려움 없이 다가오게 하기 위해 작아지셨습니다. 죄인을 심판하기보다, 죄인 곁에 앉기 위해 사람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마치 사람이 산새가 되어야만, 새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야만 우리와 함께 울고, 배고프고, 외로울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의 겸손은 성품 이전에 구원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분이 낮아지신 것은 모범을 보이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천둥과 번개 가운데 오셨다면, 만일 예수님이 영광의 군대와 함께 오셨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은 꿇었을지 몰라도, 그분의 마음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고, 병든 자의 손을 잡으셨고, 죄인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
큰 하나님’만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는 하나님, 위에서 명령하시는 하나님, 능력으로 압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압도하기보다, 우리를 이해받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축소되어 오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분은 작아지심으로 우리를 살리셨고,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비우셨다면, 오늘 우리는 그분 앞에서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 낮아지신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