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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적인 생활 - 우리의 피난처인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숨을 곳을 찾는 영혼에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30.

인간의 삶은 평온해 보일 때조차 보이지 않는 전쟁터 위에 놓여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노골적인 악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안전해 보이는 순간, 가장 선하고 유익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바로 그때 우리를 공격합니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꽃을 찾습니다. 꽃은 생명의 상징이며, 달콤함과 유익함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꽃잎 사이에는 조용히 숨어 있는 거미가 있습니다. 벌은 즐거운 일을 하다가, 경계심을 잃은 그 순간 마비되고, 결국 잡아먹히고 맙니다. 이처럼 사탄은 악한 장소에서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한 일, 봉사, 열심, 기쁨의 순간 속에서 우리의 기도가 얕아질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가 깊지 않으면 영혼은 무감각해지고, 무감각해진 영혼은 가장 먼저 사로잡힙니다.

죄가 가져오는 가장 큰 비극, ‘
마비’ 죄는 단번에 우리를 쓰러뜨리지 않습니다. 먼저 양심을 마비시키고, 다음으로 의지를 약화시키며, 마침내 저항할 힘 자체를 빼앗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위험을 분명히 보면서도 피하지 못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흘러가는 강물 위에 떠내려오던 시체 위에 한 마리의 날짐승이 내려앉았습니다. 먹이가 풍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울의 냉기는 이미 그 발을 시체에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날짐승은 폭포가 가까워진 것을 알았고 날아오르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결국 그 새는 먹이를 움켜쥔 채 폭포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죄의 유혹도 이와 같습니다. 당장은 이익처럼 보이고, 즐거움처럼 보이며,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미 발이 얼어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영혼은 자유를 원하지만, 더 이상 날 수 없습니다.

눈 덮인 산에 사는 짐승들은 흰 털을 입습니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입니다.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될 때, 적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카멜레온이나 가자미 역시 순간적으로 주변 색과 동일해짐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눈먼 물고기는 그러지 못합니다. 주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습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혼은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끊임없이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점점 그분의 마음, 그분의 성품, 그분의 거룩함을 입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수록 우리는 그분의 보호색을 입게 되고, 사탄의 공격은 점점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영적 눈이 어두워지면 변화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영혼은 이미 위험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피난처는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사람은 맹수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세균입니다. 큰 죄만이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 깊숙이 숨은 작은 악념, 습관적인 자기중심성, 은밀한 판단과 비난이 영혼을 서서히 무너뜨립니다.

우리 몸 안에는 병균과 동시에 그것을 억제하는 건강의 요소가 함께 존재합니다. 건강이 우세할 때 병균은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면역이 무너지면 작은 균 하나가 생명을 위협합니다. 영혼도 동일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한 생각, 겸손, 감사, 사랑이 강할 때 악한 사상은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어떤 승리도 불가능합니다.

악한 생각은 때로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스스로 생명을 끊게까지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주셨습니다. 자기를 죽이지 말고, 악한 생각을 죽이십시오. 독이나 무기를 드는 대신, 기도라는 영적 무기를 드십시오. 악을 뿌리째 뽑을 때, 우리는 살고 다른 이도 살릴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은 영적 자살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웃을 섬기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남을 돕는 가운데 기쁨이 흐르고, 그 기쁨이 다시 우리를 살립니다. 이 법칙을 거스르면 기쁨이 사라지고, 영혼은 기근에 빠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 9:23).

우리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여행자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안식은 없습니다. 죄와 슬픔, 고통과 죽음이 없는 곳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우자(寄寓者), 즉 잠시 머무는 나그네입니다. 본능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새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양심이 살아 있는 영혼은 이 땅을 떠날 때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지만, 여기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상태로의 출생입니다. 태아가 모태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듯,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육체는 준비의 장소였고, 영원은 완성의 자리입니다.

결국 우리의 피난처는 장소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닮아가는 삶, 성령의 도우심 속에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모든 죄와 악, 시간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그리스도 안에 숨은 자는 결코 폭포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품 안에 거하는 자는 영원히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