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의 몸 안에서 쉼 없이 순환하는 피와 멈추지 않는 호흡처럼, 자연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손길이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공기와 물, 태양과 별들은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이 부여하신 목적에 충실합니다.
그렇다면 이성도 있고 영혼도 있는 인간이,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어찌 창조주의 뜻을 태만히 여길 수 있겠는가. 말 없는 피조물조차 질서 속에서 사명을 다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는 우리가 봉사와 희생의 자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불순종일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탄은 아무런 대의명분도 없으면서 밤낮없이 부지런하다는 점입니다. 에덴에서 하와를 미혹하던 뱀은 지금도 쉼 없이 기어 다니며 사람들을 파괴의 길로 이끕니다. 반면 진리를 알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우리는 때로 “바쁘다”, “여력이 없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물러섭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은혜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성경의 표현대로 우리는 사탄보다 더 무책임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야고보의 말처럼 마귀를 대적하며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어떤 순례작가 여행 중 밀주머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 수많은 개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개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는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꼈고, 결국 며칠을 되돌아가 개미들을 원래 살던 곳에 내려놓았습니다. 사람은 작은 벌레에게도 이토록 동정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길을 잃고 방황하며 죄와 절망 속에서 헤매는 영혼들을 대할 때 우리는 왜 이처럼 무관심한가? 잃어버린 자를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에게 맡겨진 책임이며, 봉사의 핵심입니다. 또 다른 개미 이야기 역시 깊은 교훈을 준다. 한 개미가 씨앗을 발견하고 그냥 지나치는 듯하더니, 잠시 후 많은 동료를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그 개미는 혼자 소유하려 하지 않고 함께 나누려 했습니다. 이기적인 인간은 이 작은 피조물 앞에서 부끄러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받은 말씀과 은혜는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나눔의 사명인 것입니다.
봉사와 희생의 절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프랑스의 조각가는 밤새 만든 진흙 조각이 서리로 상할까 염려하여, 자신이 덮고 있던 모포를 벗어 조각을 감싸고 그 옆에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지만 조각은 완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 없는 작품을 위해서도 이처럼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살아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는 일이 어찌 헛되다 하겠습니까.
봉사는 결국 ‘녹아지는 삶’입니다. 소금은 녹아야 음식에 맛을 낼 수 있고, 산 위의 눈은 녹아야 메마른 평야를 적십니다. 만일 눈이 끝내 녹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일 뿐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불 앞에서 녹아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자기부정과 희생으로 연단되지 않은 신앙은 영적 갈증을 해소하지도,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지도 못합니다.
봉사와 희생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십자가 없는 섬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유혹을 겪지 않고 영적 진보를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십자가는 우리를 보호하고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도구가 됩니다. 새가 날개를 움직이지만 동시에 날개가 새를 떠받치는 것처럼,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자는 그 십자가로 인해 끝까지 견딜 힘을 얻게 됩니다.
가정과 일상 속의 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책임을 짐으로만 여기고 회피하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 역시 거룩한 봉사입니다. 자기희생으로 감당하는 일상의 의무는 기도와 금식 못지않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실제로 남을 돕는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길이며,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동체를 살리는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성도의 존재 방식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이 황금률을 삶의 중심에 둘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현재 속에서 살아내게 됩니다. 자기부정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사랑을 배우지 않고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작은 삶을 통해서도 창조주의 목적은 오늘도 계속 이루어집니다. 녹아지는 삶, 그것이 봉사요 희생이며, 참된 영적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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