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우리는 흔히 도덕을 규범으로, 미(美)를 감상으로 생각합니다. 도덕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고, 미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덕과 미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흔적이며, 하나님과의 접촉 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도덕은 돌맹이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반듯하고 윤이 나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에 쥐면 차갑고, 생명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도덕은 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직하고, 말은 바르며, 기준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삶 가까이 다가가 보면 따뜻함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고, 긍휼이 없고, 오래 참음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도덕의 근원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의 기준일 뿐 아니라 선의 생명이십니다. 하나님과의 접촉이 끊어진 도덕은 규칙은 될 수 있어도 사람을 살리는 힘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삶을 폭풍우에 휩쓸려 다니는 모래무덤에 비유합니다.
오늘은 이 말, 내일은 저 말, 상황에 따라 바뀌는 기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삶은 결국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접촉을 보존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의 삶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변하지 않는 선의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미(美)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삶의 향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경건한 종교 생활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일입니다. 중국 철학자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인간 존재의 혼란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의 경계도 흐려집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기준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죄인인 나, 그리고 은혜가 필요한 나를 알게 됩니다. 이 자기 인식이 없으면 도덕은 교만이 되고, 미는 자기 과시가 됩니다.
공자는 한 봉건 영주의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정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양을 훔치면 아들이 고발합니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을 감싸고, 자식은 아버지를 감쌉니다. 그 가운데 정직이 있습니다.” 공자의 말은 인간적 도덕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도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 단계 더 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또 공자는 “남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원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의 도덕은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적극적 사랑입니다. 하지 않는 죄뿐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사랑을 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죄인 것입니다.
미는 장식이나 감상이 아닙니다. 미는 하나님의 임재가 남긴 흔적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피조물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분의 활동적인 간섭이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납니다. 산과 들, 꽃과 열매, 음악과 시, 그리고 뜻 있는 인간의 행위까지, 모든 참된 미는 선과 진리의 표현입니다.
에머슨은 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심적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음악은 마음을 진리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사무엘상과 열왕기서에서 예언자들이 음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처럼, 참된 미는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되돌립니다. 그러나 이 미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뿐입니다. 영혼이 굳어 있으면 아름다움도 지나쳐 버립니다.
한 순례자가 티벳으로 가던 중 한 산촌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몸을 씻지 않아 매우 더러웠습니다. 한 소년이 그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자기 손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간 소년은 개천에서 손을 씻고 다시 돌아와 다시 비교했습니다. 아무 설교도 없었습니다. 아무 훈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깨끗함이 욕구를 일으켰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버지와의 접촉으로 살아가는 삶은 말하지 않아도 영향을 줍니다. 도덕과 미는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전염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도덕은 하나님에게서 떠나면 차갑고, 미는 하나님에게서 떠나면 공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접촉 속에서 도덕은 생명이 되고, 미는 향기가 됩니다. 오늘 나는 어떤 도덕을 살고 있는가? 어떤 미를 흘려보내고 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만이 말없이도 사람을 씻게 하는 영적 미(美)를 낳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ㅊ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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