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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적인 생활 -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9.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한복음 12:32)

사람은 종종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잊은 채 살아갑니다. 성공을 좇고, 관계에 매달리고, 때로는 쾌락이나 권력에 자신을 던지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남아 있습니다. 마치 잘 먹고 잘 사는데도, 깊은 밤이 되면 이유 없이 공허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
모정(募情)’, 곧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부싯돌이 숨겨져 있습니다.

부싯돌은 가만히 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쇠붙이와 맞부딪히는 순간, 갑자기 불꽃이 튑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도, 큰 실패를 겪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는 순간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이 고통은 어디로 가야 끝이 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부싯돌이 하나님의 현실과 마찰될 때 튀는 불꽃입니다.

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돈과 성취를 인생의 전부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삶이 무너지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다 가졌는데, 정작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의 번민은 그를 교회로 이끌었고, 말씀 앞에 앉게 했으며, 결국 회개와 눈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사람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결국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논증보다 ‘
증인’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논리 퍼즐처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철저한 논증을 원하셨다면, 하늘에 커다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써 두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았고, 들었고, 만졌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듯, 하나님은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마침내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필루의 말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귀로 듣는 말이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는 ‘
행위’로 나타납니다. 해가 떠오르고 지는 질서, 계절이 바뀌는 섭리, 양심이 죄 앞에서 불편해지는 순간들… 그러나 사람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이 ‘자연이라는 책’을 넘겨보지 않고 지나칩니다.

잘못된 숭배도 갈망의 왜곡된 표현입니다. 어떤 이는 돌에 절하며 위안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위안은 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잘못된 대상에 투사된 결과입니다. 마치 배고픈 아이가 진짜 음식 대신 모래를 입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 허기를 잊을 수는 있지만, 결코 생명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는 것입니다. 그는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그 대상처럼 굳어 버립니다. 사람은 자기가 숭배하는 것처럼 닮아갑니다. 돌을 섬기면 마음도 돌처럼 굳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사악해 보여도 그 안에는 완전히 꺼지지 않는 무엇이 있습니다.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도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양심의 떨림이 찾아옵니다. 실제로 교도소 사역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거친 죄수일수록, 가끔은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그 눈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한 신여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만약 이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사람은 죄에 대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회한도, 번뇌도,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울 만큼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고통이 그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유를 가졌지만, 그 자유로 자기 영혼의 뿌리를 잘라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목적 없이 생명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옆길로 가고, 방황하고,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목적 자체가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지세리가 말했듯, 이 신의 불씨는 끊임없이 죄와 싸우고 본원으로 돌아가려 애씁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들리실 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인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불러오십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것 같지만, 이미 불림을 받은 것입니다. 방황은 끝이 아닙니다. 번민도 실패도, 죄의 고통도 모두 귀향을 위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없이 완성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길은 하나님 앞에서 멈추게 됩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과 교제하도록 만드셨으므로 사람은 영구히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채로 있을 수 없다.” 이 진실 앞에서 오늘 우리의 번민은 심판이 아니라 부르심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