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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

영적인 생활 - 사악한 생각은 어떻게 삶을 잠식하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8.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갈라디아서 5:9)

악은 언제나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개는 아주 작고,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스며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경계하기보다 가볍게 여기고, 그 결과 그 악이 자라 우리 삶 전체를 잠식할 때에야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곤 합니다.

사악한 생각과 삶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 속의 예화를 드는데, 그 예화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죄가 인간의 영혼에 어떻게 침투하고, 성장하며, 결국 파괴에 이르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현미경과 같습니다.

나쁜 친구의 나쁜 암시는 참나무의 어린 잎에 꽂히는 곤충의 작은 침과 같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잎은 여전히 푸르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몰식자, 즉 잎 전체를 병들게 하는 혹이 자라납니다. 악한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라는 작은 타협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라면 그 사람의 판단, 감정, 선택 전체를 변질시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독을 지닌 뱀은 그 독으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악한 마음을 이미 품고 있는 사람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쉽게 중독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
미련한 자의 길은 그 자신에게 해롭다”라고만 말하지 않고, “악한 자의 교제를 멀리하라”고 경고합니다.

자바의 우파스 나무, 혹은 담장이덩굴과 같은 독초는 눈에 보이는 가시나 독침이 없어도 수액과 기름이 공기 중에 퍼져 주변 생명을 병들게 합니다. 이 독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소모성 역병을 일으킵니다. 악인의 영향력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큰 죄를 공개적으로 저지르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말 한마디, 비아냥, 비틀린 농담, 왜곡된 교리, 은근한 냉소와 불신만으로도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말합니다. 악은 전염병처럼 퍼지며, 특히 방심한 마음을 숙주로 삼습니다.

가장 단단한 나무와 바위를 파괴하는 것은 강한 망치가 아니라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벌레입니다. 그 벌레는 한 번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용히, 지속적으로 파고듭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소하다고 여겨 넘겨버린 반복되는 악한 습관과 생각입니다. 기도 없는 하루, 자기 합리화 한 번, 양심의 경고를 무시한 선택 하나가 영혼의 구조를 조금씩 허물어 갑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작은 벌레들을 초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어느 날 우리는 겉껍질만 남은 영적 생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갈이나 독사는 위험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파리와 모기입니다. 그들은 병균을 옮기며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죽음을 확산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흔히 노골적으로 악해 보이는 사람은 경계하지만, 부드러운 말과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위험한 혀는 쉽게 경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혀는 치명적인 교리와 왜곡된 복음을 사탕처럼 포장하여 퍼뜨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
그들의 말은 꿀처럼 달지만 독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덜 익은 과일에 곤충이 알을 낳으면 겉의 구멍은 자라며 사라집니다. 과일은 더 탐스럽게 자랍니다. 그러나 속에서는 구더기가 자라 과일을 파괴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릴 때, 청년기에 받아들인 사악한 생각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성공하고, 성숙해 보이고, 문제없는 신앙처럼 보이지만 속에서는 도덕성과 영혼이 썩어갑니다.

멕시코의 ‘
뛰는 콩’ 이야기는 이 현실을 더욱 생생히 보여줍니다. 콩 속의 요충은 햇볕이 내리쬐면 괴로워 꿈틀거립니다. 그 모습은 마치 콩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이 죄인의 삶을 비추실 때, 죄인은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빛을 피해 어둠으로 도망합니다. 이것이 회개 없는 삶의 비극입니다. 빛을 피할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어둠의 포로가 됩니다.

죄는 하나님이 아니라 관계를 파괴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죄는 언제나 인간 자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감정적인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그는 단지 “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빼앗은 것을 갚았고,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회개란 더 이상 나와 이웃을 해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결단인 것입니다.

사악한 생각은 항상 작게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끝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경계해야 하고, 습관을 점검해야 하며, 빛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의의 태양 아래에 머무는 자는 고통스럽더라도 치유됩니다. 그러나 어둠을 선택한 자는 편안해 보일지라도 점점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오늘, 내 마음 속에 꽂힌 작은 침은 없는지, 내 삶을 갉아먹는 작은 벌레는 없는지 주님 앞에서 조용히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