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사람들은 흔히 고통을 피해야 할 불행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통은 단지 육체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육체적 고통이 병과 상처에서 비롯된다면, 영적 고통은 하나님과의 단절, 곧 죄의 결과에서 비롯됩니다. 몸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잃은 영혼의 고통은 인간 존재의 깊은 곳을 좀먹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맹수의 이빨은 먹잇감을 오래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사의 독은 생명을 지연시키기보다 오히려 빠르게 마비시킵니다. 자연 속 죽음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고통의 연속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은 실제 고통보다 상상 속의 고통으로 더 깊이 괴로워합니다. 생각과 기억, 두려움과 예측이 고통을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비극과 동시에 가능성이 드러납니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이 지성과 감수성은, 동시에 고난을 의미로 바꾸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고통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쓴 약이 몸을 살리고, 독이 적절히 쓰이면 치료제가 되는 것처럼 고통과 고난 역시 하나님 손에 들리면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ㅊ우리는 고통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것을 제거하기보다 사용하십니다. 고난이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태도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 이 말은 고난을 미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이 영광으로 바뀐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드는가입니다.
진주는 상처에서 태어납니다. 진주는 고요한 환경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조개 속으로 들어온 모래 한 알, 기생충 하나가 조개에게는 끊임없는 자극과 상처가 됩니다. 그 고통을 덮기 위해 분비된 물질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진주가 됩니다. 만약 그 상처가 없었다면, 그 영롱한 빛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없이 깊어지는 영혼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경고가 따릅니다. 진주는 아무렇게나 다루면 쉽게 광택을 잃습니다. 기름, 먼지, 부패는 그 아름다움을 손상시킵니다. 고난을 통과해 빚어진 영혼이라 할지라도 겸손과 감사, 사랑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 빛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폭풍은 파괴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폭풍우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비는 공기를 정화하고, 땅속 깊은 곳에 생명을 깨웁니다. 햇볕은 수증기를 일으켜 다시 비로 돌려보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바람은 우리의 안전한 틀을 흔들어 깨뜨립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영혼은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 3:8) 고난의 바람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영적 생명력이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더 깊이 성장할수록 이 세상에서 더 큰 고독과 오해를 경험합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습니다.(딤후 3:12) 그러나 그들은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로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고난을 몸소 겪으신 그리스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고난을 관찰하신 분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통받는 자의 심정을 아시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자와 사도, 그리고 주님 자신까지 고난 없는 길을 걷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를 택하면 고난을 피할 수 없고, 고난을 피하려 하면 진리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그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그와 같은 죽음에 이르려 하노라.”(빌 3:10)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차 올 영광의 표지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받은 자는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딤후 2:12)
고난은 목적지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유혹, 시험을 지나야 합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꿀벌에 침이 있듯,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듯 모든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그 고난은 반드시 우리를 파괴하지 않고 완성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다면 그 고난은 이미 은혜가 되었습니다. 고통은 낭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고난은 언제나 생명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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