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늘 저 너머에 있는 어떤 공간인지, 죽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한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장소 이전에 상태이며, 죽음 이후 이전에 생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주님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눈으로 확인하는 영역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야 인식되는 세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눈은 오직 물질적인 것만 봅니다. 집의 크기, 재산의 많고 적음, 성공과 실패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도 영적 실재이기에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결코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그래서 더 급진적인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이 거듭남은 단순한 종교적 결심이나 도덕적 개선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릴 때,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서 역사하여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 순간, 낙원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실재로 시작됩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십자가 위의 강도입니다. 그는 선한 행위를 쌓을 시간도, 신앙 훈련을 받을 여유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를 주로 고백했을 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주님은 “조금 기다리라”거나 “차후에 허락을 받아 보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인으로서의 권위, 곧 낙원을 소유하신 분의 확신으로 강도를 그날 곧바로 낙원으로 이끄셨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자리였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가 맺힌 자리였습니다.
기회는 주어지나,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주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닫아두지 않으십니다. 유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장차 어떤 배신을 할 것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제자 중 하나로 부르셨고, 함께 먹고 자며 복음의 현장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고, 자기 안에서 해결하려다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자기 처소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처소”, 곧 지옥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닙니다. 지옥은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의 내면 상태, 다시 말해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자유의지의 최종적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만들어 낸 고통의 생태계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하나님 안에 있지 않은 상태이며, 반대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임재하시기에, 하늘나라는 특정 장소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감옥에서도, 병상에서도,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을 누립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은 그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낯선 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마치 오래 떠났던 가족을 맞이하듯, 혹은 사랑하는 친구를 재회하듯 진심으로 기뻐하며 맞아 주었습니다. 그는 도회지로 들어가 웅장한 저택들과 값비싼 가구들을 보았지만, 집들은 모두 문이 열려 있고 비어 있었습니다. 왜 문을 잠그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에는 도적이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닫혀 있을 때는 자물쇠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마음에 계실 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를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나라입니다. 그곳에서는 각자가 자기 유익보다 이웃의 필요를 먼저 생각합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 역시 이를 잘 보여줍니다. 형은 동생에게 필요한 물건을 들고 동생 집으로 가고 있었고, 동생 역시 같은 생각으로 형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서 서로를 만났습니다. 상대를 위하려던 마음을 알게 된 순간, 두 형제는 물건보다 더 큰 기쁨, 서로를 향한 사랑을 껴안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배려, 비교가 아니라 헌신, 계산이 아니라 사랑으로 움직이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 환상 속에서 한 사람은 천사와 인간이 참된 형제처럼 함께 예배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 앞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의심할 것 없이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인간이 소망하던 참된 영원의 가정이다.” 천국은 미래에 완성되지만, 그 씨앗은 이미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여전히 고난과 눈물이 있지만, 그 나라에서는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 오직 끝없는 생명과 기쁨만이 흐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도피의 환상이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키는 실재인 것입니다. 거듭난 자의 삶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완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겉으로는 교회에 있으나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묶여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도 회개하는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사랑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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