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 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가복음 14:32~38)
겟세마네 동산의 장면은 언제 보아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이르러,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나아가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주님의 이 절절한 부탁은 단순히 한밤의 경계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앞둔 주님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장크트 플로리안 대성당의 제단화에는 이 순간의 긴박함이 선명히 담겨 있습니다. 깊은 어둠 속, 붉게 물든 하늘은 마치 주님의 피눈물을 반영하는 듯 처절한 빛을 뿜어냅니다. 제자들은 그 아래서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고통의 절정에 서 계신 주님과 대비되는 제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치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에 더 가까울까요?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히 “힘들다”라는 한숨이 아니었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에는 두 가지의 긴장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피하고 싶으신 마음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결단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라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요? 우리는 작은 고난에도 불평하며, 작은 불편에도 쉽게 신앙을 내려놓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버지의 뜻을 붙드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주님의 가장 큰 고통의 밤에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주님의 말씀은 단지 당시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때에 얼마나 자주 잠들어 있습니까? 세상의 유혹에, 물질의 달콤함에, 안일함과 자기중심성에 젖어 영적 무감각 속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겟세마네의 장면은 우리에게 불편한 거울이 됩니다. 주님의 고통은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 앞에서 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겠다” 다짐하지만, 정작 주님이 원하실 때에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졸고 있던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일깨우셨고, 끝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그들의 나약함까지도 감싸 안으셨습니다. 우리가 늘 깨어 있지 못한다 해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은혜 때문에 다시 일어나 기도할 수 있고, 다시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의 밤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이것은 단지 제자들을 향한 부탁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단순히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태도이며, 세상의 유혹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놓치지 않는 자세입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무릎 꿇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피처럼 붉은 하늘 아래,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그 고통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비록 연약하여 때로는 잠들어 버릴지라도, 다시 깨어나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겠노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성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다의 키스 - 가증스런 입맞춤 (0) | 2025.08.24 |
---|---|
최후의 만찬 (0) | 2025.08.23 |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 지체하시는 예수님 (0) | 2025.08.23 |
탕자의 귀향, 그리고 하나님의 두 손 (0) | 2025.08.23 |
선한 목자 - 절대 선이신 하나님 (0) | 2025.08.23 |